“떼로 보이던 듀공, 이젠 1~2마리… 전과 달리 해안 다가온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북부 토레스 해협 제도(諸島) 원주민들이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로 해수면 상승 피해가 생겨났고 섬 주민들이 이주하고 있다”며 제기한 기후변화 소송 사건과 관련, 호주 연방법원은 지난 19일 약 2주간의 4개 섬 현장검증‧변론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재판부가 직접 지역을 장기간 방문해 벌인 이례적인 변론 절차에서 어민과 잠수사, 해안관리 요원으로 살아온 이들이 증언대에 나와 침수 피해와 해양 생물의 변화를 말했다. 달라진 기후와 생태로 조상의 묘지마저 물에 잠겼고 후대에 전승할 전통은 사라졌다는 것이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봐온 이들의 증언이었다.
‘보이구’ 섬에서 지난 5일 열린 첫 변론에는 원주민 지도자 폴 카바이(55), 보이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고인 파바이 파바이(54)가 출석해 호주 정부의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주장했다. 토레스 해협 섬들이 직면한 해수 침수 피해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대기오염 때문인데, 결국 거대기업이 준 피해가 책임 없는 약자를 기후 난민으로 만든다는 주장이다. 카바이는 지난 4월 국민일보에 “우리의 섬은 잠기고 있다” “우리는 그 일에 가장 적게 기여했으나 가장 많이 고통받고 있다”는 편지를 보냈었다(국민일보 4월 26일자 8면 보도). 기후위기를 초래한 집단뿐 아니라 환경오염 책임이 덜한 이들이 함께, 또는 더욱 많은 피해를 입는다는 ‘기후불평등’ 개념은 기후위기 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폭우가 소송의 이유
보이구 마을회관에 법정이 꾸며진 첫날에는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토레스 해협 제도의 건기에 해당하는 시기라서, 원고 측에서는 “이 비는 우리가 왜 호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지를 말해 준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최근 호주 연방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기후가 달라져 조부모들로부터 배웠던 계절과 바람, 조수(潮水)의 지식을 자녀에게는 물려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주변 이웃들과 ‘건기에 비가 내리고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말을 주고 받는다”는 서술도 진술서에 담겼다.
보이구에 이어 ‘바두’ 섬에 마련된 법정에는 페오 아맛(56)이 나와 전에 없던 많은 기후변화가 최근 시작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근 3~5년 사이 자신이 사는 곳의 해변이 큰 비로 인해 20m 가량 침식됐으며,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는 진술서를 사진과 함께 제출했었다. 집 뒤쪽으로는 언덕과 작은 만이 있어 더 물러설 곳도 없다는 말이었다. 지난해에는 예기치 않은 큰 비로 집 바닥에 10㎝가량 물이 찼는데, 바닷물도 섞여 있었다고 그는 진술했다.
어업에 종사하는 그는 지난해 중 한 달 만에 1.5t 가량의 가재를 잃은 일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가재를 잡아 공장의 탱크에 넣고 해수를 주입해 관리하는데, 해수의 온도가 섭씨 37도 가까이로 오르며 가재들이 ‘익어버린’ 사례였다고 진술서를 써냈다. 바다 곳곳에는 전에 없던 모랫더미가 많이 생겨났고, 이 모래들이 암초를 덮으며 낚시를 갈 때마다 접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변했으며, 이 때문에 가재를 잡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욱 깊이 잠수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다가오는 듀공과 맹그로브
‘사이바이’ 섬에서는 해안관리 일을 해온 허버트 와루산(49)의 증언이 계속됐다. 2012년부터 해안관리를 하고 있다는 그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인 맹그로브 서식지가 달라진다는 관찰 경험담을 말했다. 기본적으로 바다에 있어야 할 맹그로브가 점점 내륙 가까이에서 살게 됐다는 것인데, 높은 조수로 맹그로브의 씨앗이 내륙 쪽으로 이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마을에서 바나나, 토란, 고구마 재배를 위해 공동으로 운영하던 농장은 바닷물이 들이쳐 토양이 소금기를 머금으면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고 그는 진술했다.
바두 섬의 해안관리 감독관인 제럴드 보위(46)도 해양생태계 변화를 증언했다. 3개월마다 관찰 보고서를 작성해온 그는 2~3년 전부터 듀공과 거북이들의 모습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한때 떼로 만날 수 있던 듀공은 이제 1~2마리를 만날 수 있을 뿐이며, 이 듀공들이 암초 위나 해안에서 먹이를 먹더라는 것이다. 바다 곳곳에 모래가 쌓여 듀공의 먹이인 해초가 사라진 데 따른 변화인데, 듀공이 인간의 사냥 위험을 감수하며 해안에 다가오는 건 전에 못 보던 일이라고 보위는 말했다. 그는 거북이를 잡아 살펴보면 뱃속에 검은 물질이 들어 있고 지방질에서는 흰 물방울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 역시 자신이 어렸을 때엔 보지 못하던 것들이라 했다.
4개 섬 가운데 마지막으로 법정이 열린 ’케언즈‘ 섬에서는 잠수사로 일하는 보고 빌리(55)가 나서 물속의 변화를 말했다. 9살 때부터 잠수를 시작했다는 그는 약 5년 전부터 산호들의 백화(白化) 현상이 나타나 가재들이 떠났다고 증언했다. 가재들 뿐 아니라 물고기들도 전에 없이 만나기 어려워졌고, 그나마 어업은 수온이 떨어지는 밤에나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빌리의 증언이었다. 그의 지역사회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가 예상되는 선대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다만 이장(移葬)은 마을의 전통이 아니며 본인 스스로도 태어난 섬에 묻히길 원한다고, 그는 재판부에 진술했다.
“고통받는 전 세계를 위한 소송”
기후소송네트워크(CLN)는 토레스 해협 제도 원주민들의 호주 상대 소송을 “기후위기를 겪는 지역사회의 소 제기로 선진 산업화 국가가 재판에 회부된 최초의 사례”로 평가한다. 호주 정부는 “섬이 가라앉는다”는 원주민들의 주장이 틀렸거나 여전히 사실이 아닌 의혹일 뿐이라며 소 각하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호주 연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변론을 진행했다.
토레스 해협의 해수면은 지난 10년간 약 6cm 상승했다. 원주민들은 “세계 평균 상승 폭의 2배”라고 말한다. “잠기는 우리의 땅을 붙들고 싶다.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카바이는 “막대기 1~2개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3~4개가 되면 부러뜨리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호주 정부가 무시할 수 없도록 기후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키워 달라는 호소였다. 대표 원고인 파바이는 CLN을 통해 “(이번 소송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있는 전 세계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들의 소송 경과는 한국을 포함, 네덜란드 우르헨다재단 등 기후변화 소송과 관련된 세계 각국의 법률가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토레스 해협 조약’에 따르면 호주는 보호구역과 주변의 해양 환경을 보호‧보존하기 위한 입법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호주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정해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법원 판단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 연방법원은 오는 10월 말부터 멜버른에서 기후 과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듣기로 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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