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와의 운명적인 만남... 정원사는 나무로 말한다 [일본정원사 입문기]
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 <편집자말>
[유신준 기자]
▲ 일본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초록의 그라데이션이 봄의 절정이었다 |
ⓒ 유신준 |
본격적으로 전지가위를 잡기 전에 이론공부 과정이 있었다. 이론공부 이전에 물론 사부와의 만남이 있었고. 인연의 끈은 사람을 통해 이뤄졌다. 하루미씨였다. 우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때로 비명을 지르며 살지만 또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들 아니던가.
하루미씨는 몇 년간 내 일본 생활의 수호천사였던 분이다. 그녀에게 졸랐었다. 조경사 자격을 땄으니 실무 연수가 필요하다고. 그러니 사부님을 구해달라고. 당시는 농반진반이었다. 잊고 지냈는데 전화가 왔다. 적당한 분을 구했으니 시간 있으면 건너와 보라고. 말이 씨가 됐다.
사부와의 만남
부라부랴 카멜리아 배편을 예약했다. 그때는 일본입국 절차가 꽤 복잡했었다. 나는 백신접종을 하지 않아 72시간 이내에 PCR 검사를 마치고 증명서를 받아야 했다. 이걸 여권사진과 함께 비짓재팬 사이트에 올려 관계자의 확인을 받아야 비로소 입국허가 블루화면이 떴다. 이미그레이션 통과 전 입국 절차의 시작이 이정도였다.
▲ 세 점의 바위도 바닥에 깔린 이끼와 더불어 일본정원의 고즈넉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
ⓒ 유신준 |
오후 3시쯤에 하루미씨와 함께 사부댁으로 갔다.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치 교토의 어느 전통정원이라도 옮겨 놓은 듯 단아하고 인상깊은 정원이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도 듣기 전에 한눈에 정원에 매료됐다.
▲ 철쭉은 녹색의 계조를 즐기기 위해 단풍나무 아래 두었다 |
ⓒ 유신준 |
사실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시간에 쫒겨 잠깐 지나가듯 정원을 보는 건 싫었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을 잊고 느긋하게 보고 싶었다며. 사부의 정원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응어리들이 세탁이라도 되는 듯 정결해지는 느낌이라 했다. 하루미식 정원 사용법이다.
사부의 정원은 두 사람의 혼을 온전히 빼어놓기에 충분했다. 계절을 즐기는 일본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초록의 그라데이션이 봄의 절정이었다. 사부는 본래 일본정원이란 꽃이 아니라 녹음이 주제라 했다. 여름에 시원함을 누리기 위한 기능적 역할이 정원의 출발이었다.
▲ 나무를 선택할때 전체적인 정원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게 고급기술이다 |
ⓒ 유신준 |
인상적인 것은 철쭉의 위치가 단풍나무의 그늘 안에 있는 거였다. 양수인 철쭉이 그늘에 있는 이유를 여쭸다. 본래 철쭉은 꽃을 즐기는 나무지만, 그늘에서는 꽃이 안피는 걸 이용해 전체 풍경 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배치했단다. 녹색의 계조를 즐기기 위해 단풍나무 아래 두었다는 것이다.
종류가 다른 단풍나무가 또 있었다. 응접실 바로 앞 양쪽에도 늘씬한 청단풍을 배치해 전체적인 풍경에 싱그러움을 더 하고 있었다. 뒷쪽으로 물러앉은 세 점의 바위도 바닥에 깔린 이끼와 더불어 일본정원의 고즈넉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왜 하필 단풍이냐고 여쭸더니 '이 땅의 나무여서'라고 했다. 선대 정원사였던 아버지가 밭에 심어놓은 것을 점찍어 두었다가, 50여년 전 정원을 처음 만들 때 메인 트리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나무라야 풍경과 조화를 이뤄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는다고 했다. 풍경의 핵심은 밸런스라며.
▲ 풍경의 핵심은 밸런스다. 정원사는 나무로 말한다 |
ⓒ 유신준 |
밤톨은 한 그루 두 시간이면 되지만 저렇게 다듬으려면 하루종일 걸린다는 사부의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실력은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다. 입이 아니라 솜씨인 거다. 구구한 설명같은 거 필요없다. 정원사는 나무로 말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녹조 라떼를 넘어 곤죽 상태..."낙동강 올해가 더 끔찍하다"
- 오염수 검증한 미 핵물리학자 "콘크리트로 만들면 방류보다 낫다"
- 군검찰 출석 부승찬의 일갈 "권력의 개 되지 말아야"
- '통일부-외교부 통합' '김정은 체제 파괴' 주장한 통일부장관?
- 국힘 "바다서 방사능 나오면 책임"... '어떻게?' 질문 뒤 답변은
- 유승민 "오염수 방류 반대가 괴담? 국민 개돼지 취급 오만"
- "윤 대통령 낙점한 새 통일부 장관 후보는 '통일부 파괴 공작원'?"
- [오마이포토2023] "국힘,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에 나서라"
- 교사·학부모들, 하윤수 부산교육감 1년 혹평
- 윤 대통령, 또 문재인 정부 직격... "종전선언 노래 부르고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