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일침 들은 이재명…'개딸 손절' 나설 수 있겠나
만들어야"…심재권 "보통 사람 의식 정치해야"
비명 중심 '개딸 비판'에도 '친명'들은 결사옹위
일각선 "팬덤 더 강해지면 통합 어려울 것" 우려
원로들로 구성된 더불어민주당 고문단이 이재명 대표를 향해 "골수 지지층을 상대로만 정치를 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 직후 '개딸(개혁의딸)'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조짐이 보이는 만큼, 당 통합을 위해 이 대표가 친명 강성 팬덤을 내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고언이다. 다만 당내에선 이 대표가 자신의 유일한 정치적 기반이자 자산인 팬덤을 떨치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8일 BBS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의 최대의 개혁·혁신은 단합(을 통해) 강한 민주당이 되는 것"이라며 "개딸·낙딸·수박 이런 분열의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민딸, '민주주의 딸'로 다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민주 정당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당내 비판이 가능하다'가 돼야 된다"며 "이재명 대표가, 또 누가 당대표가 되든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소통과 설득, 통합의 정치로 가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민주당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를 향해 강성 팬덤과 작별하고 당내 통합에 힘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에게 팬덤을 경계하라는 지적은 당내 고문들에게서도 나왔다. 전날 이 대표는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옥두 고문을 비롯해 김장곤·김철배·김태랑·남궁진·백재현·심재권·유용근·이미경·이석현·최봉구·이강철·장영달·김손·박지원 등 15명의 고문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해당 간담회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지향해야할 길에 대한 당 원로들의 조언을 듣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당내 원로들은 이 대표를 향해 두 가지를 주문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이 대표를 향해 "우리 당은 대여 투쟁은 잘하는데 당내 관리는 소홀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졌을 때 당 지도부가 진상조사를 하지 않고 검찰 수사에만 맡겼던 점을 지적하면서 "당내 비리 의혹이 터지면 법원에 미룰 게 아니라 당대표가 결단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원로들은 이 대표를 향해 '강성 지지층'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전 부의장은 전날 "당대표 한 사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며 "뭐만 하면 '수박'이라고 강성 지지층이 공격하니 의원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당 비판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이 대표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재권 전 의원도 "지금 우리 당 지지율이 70%는 나와야 하는데 민주당이 잘못하니까 그만큼 안 나오는 것"이라며 "보통 사람들을 의식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당 비주류를 수박이라고 부르고 공격하고 비난하는 분들에게 부탁드린다. 당 안에서의 혐오·공격·분열을 자제해달라"(박용진 의원) "폭력적인 행태를 하는 행동을 '개딸이니까, 지지자니까, 우리 당원이니까 봐주자' 이런 걸 하지 말아야 한다"(김종민 의원)는 등의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팬덤을 경계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는 그간에도 계속돼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한 무분별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개딸들의 망동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신경민 전 의원은 지난 26일 한 라디오에서 아예 "우리는 이재명 대표가 '이낙연 악마화'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 대선 패배 책임은 이낙연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개딸들 중심으로 그 논리를 1년 이상 확장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친낙계로 꼽히는 윤영찬 의원도 같은 날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공격하고 비판하면 우리 당이 커질 수가 있겠느냐. 이 대표를 굉장히 생각하는 마음, 진정성은 알겠지만 오히려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은) 이 대표를 죽이는 길이고 우리 당을 위축시키고 왜소하게 만드는 행위"라며 "당과 이 대표를 생각한다면 이런 일들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개딸들이) 이 대표에 대한 애정을 독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에도 이 대표가 개딸들과 선을 긋기 위한 진정성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단 점이다. 오히려 이 대표의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은 개딸들을 비호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 대표 최측근인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지난달 29일 이 대표가 친명 강성 지지층 온라인 커뮤니티인 '재명이네 마을'의 이장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예를 들어서 BTS 보고 '아미 그만둬라'고 얘기가 가능하냐"며 "여기(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그만둬라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우상호 의원도 "재명이네 마을은 재명이네 마을이잖나. 그럼 재명이가 이장하는 게 맞지 (않나)"라며 "지금 민주당이라고 하는 큰 당을 어떻게 운영할 거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이장 사퇴 논의는) 사실 별로 정치적 담론에 올라올 내용들이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에 당내 시선은 혁신위원회로 옮아가고 있다. 혁신위가 친명계의 요구 사항인 대의원제 폐지를 논의할지 여부에 따라 팬덤을 대하는 이 대표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서다. 특히 대의원제는 혁신위가 논의할 것으로 전망되는 공천권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당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혁신위에서 대의원제까지 건드리겠다고 한다면 이재명 대표와 친명들의 시그널이 들어갔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이렇게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도 밀어붙인다면 팬덤의 힘은 더 강해질 것이고 통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도 자신에게 걸린 사법리스크 때문에 강성 지지층을 매정하게 끊어내지 못할 것"이라며 "외부 소음이 확산되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총선이 다가오는 의원 개개인 입장에선 선거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실제 당의 분열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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