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딱이는 올챙이, 노래하는 산까치... 전원생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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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기자]
새벽 창문을 열자 훅 넘어오는 바람엔 선선함이 묻어난다. 봄이 물러나고 여름이 온다지만, 바람의 맛은 상쾌하기만 하다. 이층 서재에서 창문을 열면 언제나 만나는 상쾌함이다. 창문 밖으로 팔뚝을 들이민다. 피부에 닿는 상쾌함을 떨칠 수 없어서다. 살짝 돋아 오르는 소름을 이 여름에 만날 수 있다.
전원에선 이런 쾌감을 사철 만날 수 있다. 도시에선 만날 수 없는 신선함이다. 봄이면 서늘함에 선선함이 묻어나고, 여름이면 풍성함이 숨어 있다. 가을이면 익어가는 가을바람에 젖어들고, 겨울이면 썰렁하지만 시원함이 섞여 있는 바람이다. 오래전 배낭여행의 기억이다.
바람의 질감
▲ 봄을 장식하는 꽃들의 잔치 봄의 골짜기는 늘, 꽃이 장식해준다. 붉은 꽃잔디가 장관이고 영산홍과 철쭉이 만발한 전원은 언제나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골짜기의 삶은 늘 싱그럽고 평화롭다. |
ⓒ 박희종 |
아침이슬이 내려앉은 잔디밭에 온갖 삶이 가득하다. 잔디에 떨어지는 이슬이 우선이고, 이곳저곳을 드나드는 벌레들이 수두룩하다. 부지런한 거미는 하얀 거미줄로 벌써 수를 놓았다. 거미줄에도 하얀 이슬이 매달려 바람그네를 탄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작은 벌레들은 먹거리를 찾아 잠시도 쉼이 없다.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는 잔디밭엔 맑음이 가득하다. 잔디 잎에 달린 이슬 방울이 떨어질까 말까 망설이던 순간, 지나가는 벌레에 깜짝 놀랐다. 기어이 떨어진 이슬방울은 대지 속으로 숨어들고 말았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어울림에 넋을 놓고 있는 순간, 잔디밭 너머 길가 도랑은 여전히 옹알거린다.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집 근처 작은 도랑은, 이곳 골짜기에 터를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도랑이 주는 추억 속에 살고 싶어 서슴없이 눌러앉은 골짜기다. 맑은 물이 하얀 모래를 밀어내던 작은 도랑엔 이야기가 많았다. 가재가 자갈 밑으로 숨어들고 올챙이는 꼬리를 흔들며 삶을 노래했다. 여기에 앙증맞은 고마니 풀이 분홍빛 꽃을 피우고 하늘거리면, 작은 도랑을 훌쩍 뛰어넘어 오르던 작은 동산이 생각나는 도랑이다. 조용히 들려오는 도랑물 소리는 여전하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아온 세월, 시골에 터를 잡고 싶었지만 감히 나서질 못했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던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 순간 삶의 터전을 다시 잡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나를 위한 삶은 무엇이었던가? 어느 순간 번뜩 떠오른 생각은 삶을 흔들어 놓았다. 이 곳은 나를 위해 살아보자는 생각에 차지해본 삶의 터전이다. 늙어가는 청춘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조용히 살자는 생각이었다.
▲ 사철의 노래하는 도랑 집앞에 흐르는 작은 도랑이다. 봄이면 초록을 키워내고, 여름이며 풍성함울 안겨준다. 가을이면 결실을 노래하며 겨울이면 봄을 불러내는 사철 노래꾼이다. 언제나 끊임이 없는 작은 도랑은 같이 살아가는 친구이기도 하다. |
ⓒ 박희종 |
사시사철 지껄이는 도랑은 밤새도록 지껄여도 끊임이 없다. 가뭄 따라 소리는 줄었지만 전원에서 느껴보는 한가함이다. 한 여름의 으르렁거림을 준비하는 듯이 조용히 옹알거린다. 바위를 넘어 흐르는 물은 거스름이 없으며 언제나 주어진 길을 따라 흘러간다. 장애물은 피해가고 마른 땅엔 스며들며 온갖 생명을 키워준다. 봄이면 생명을 길러내고 여름에는 으르렁거리며 골짜기를 호령한다. 가을을 속삭이며 겨울이면 봄을 부르는 소리였다. 아직도 조용히 옹알거림이 정다운 아침이다.
신선함을 가득 안고 서재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정리해 볼까? 서재가 언제나 편안함을 주는 건 창문 앞에 펼쳐지는 시골풍경 덕이다. 초여름의 초록이 서서히 짙어지는 아침, 오늘도 참새들이 같이 살자고 소란하다. 아침 기분을 흩트리지 않고 싶어 손사래를 쳐봐도 개의치 않는다. 내 허락과는 전혀 상관없다. 집을 짓고 새끼를 길러보겠다는 그들의 눈치 싸움은 언제나 내 완패로 끝난다. 온갖 검불을 물어 나르며 소란을 피우더니 어느새 소원을 이루고 말았다. 새끼가 어설픈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언제나 져주고야 마는 집주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더 좋은 아침이다. 신선함이 있고 고요함이 있으며 호젓함이 있다. 아무 생각 없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것을 시골에서 알았다. 무엇이든 해야 마음 편한 사람이 무심하게 그저 앉아 있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고 부지런히 텃밭을 돌봐야 하는 시골살이를 잠시 놔두고 싶다. 아무 생각 없는 아침이 부자인 듯 좋은 아침이다.
늦잠을 자던 아내가 어느새 일어난 기척이다. 아내는 현관을 나서 잔디밭을 서성인다. 시원하고도 상쾌한 바람을 찾아서다. 도시에서 낳고 자라 시골을 모르지만, 시골에 자리 잡고부턴 나보다 더 좋아한다. 텃밭 채소에 정신을 쏟고, 산나물에 관심이 많다. 아내는 산나물 하나라도 더 심고 싶어 하고,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한다. 가끔 산에 오르길 좋아하던 아내는 좋은 의미로 시골 아낙이 되었다.
지난해 녹음이 가득하던 앞 산의 모습도 달라졌다. 푸름이 쏟아지던 앞산이 휑해진 것이다. 오래된 나무를 베고 새 수종을 심은 까닭이다. 수많은 자작나무를 심었으니 먼 훗날엔 멋진 풍광이 펼쳐질 것이다. 하얀 몸집에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자작나무를 기대해 보는 앞산이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 속을 휘젓고 다니며 아내가 운동을 한다. 동네를 이어주는 작은 길이 운동하기에 좋다. 한쪽으로 도랑이 흐르고, 도랑가에 심어진 황금낮달맞이꽃이 한창이다. 노란 달맞이꽃이 아내가 오가는 길가를 밝게 빛내주고 있다.
닭과 개의 합창, 깨어나는 동네
▲ 수채화와 함께 하는 삶 늙어가면서 시작한 수채화, 은퇴후의 삶에 커다란 재산이 되고 있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화실로 향하는 이유이다. 지금하지 않으면 평생하지 못할 것 같아 시작한 수채화가 삶의 커다란 재미가 되고있다. |
ⓒ 박희종 |
온통 골짜기를 휘젓고 다니는 산까치는 봄마다 집 지을 곳을 찾는다. 입에는 검불을 물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떼를 지어 시위를 한다. 참새한테 무상으로 대여했는데 산까치는 어떻게 할까? 성질이 사나운 산까치는 블루베리를 놔두지 않고 산수유도 놔두질 않는다.
오늘도 방을 내달라는 듯 소리를 지르며 전깃줄 위에서 시위를 하고 있지만, 셋방을 주지 못하겠는 이유다. 햇살이 밝아지면서 골짜기는 아침을 맞이했다. 서서히 동네가 시끄러워지면서 살아나는 골짜기다. 조용한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맞이하는 아침에는 들이마시는 커피 향마저 편안하다.
조용한 거실에 앉아 함께하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다. 글과 함께할 수 있는 전원의 삶은 자유롭다. 자연이 주는 찬란한 아침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록이 주는 편안함과 이웃이 주는 감사함이 있다. 울을 넘어 채소가 오고 가며, 울 너머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는 한다. 그 사이로 먼 산 뻐꾸기가 싱겁게 끼어든다. 밝은 햇살이 가득한 전원의 골짜기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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