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알면 간절히 바라게 될 말

안홍기 2023. 6. 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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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재인 정부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 최종건 교수의 <평화의 힘>

[안홍기 기자]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경기장의 15만 관중 앞에서 이 대목을 연설하는 걸 TV로 보고 있던 기자는 무척 궁금했다. 남한 대통령이 건넨 '위로의 말'에 북한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문 대통령이 나오던 TV엔 김정은 위원장과 빽빽이 선 군중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갈 뿐. 평양 시민 개인의 표정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현장에 가지 못했던 게 그리 아쉬울 수 없었다. 

4년이 훌쩍 지난 시점. 당시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이었던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그때 관찰한 평양 시민들의 표정을 이렇게 전한다.

"나는 이때 주석단 앞에 서 있는 평양 시민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많은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밴 눈가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주석단 앞에 선택되어 배치됐을 당성 높은 평양 시민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에 눈물로 화답하고 있었다."

나의 궁금증이 해소됐다. 하지만 그걸로 그치지는 않았다. 다 같은 마음이었구나. 평양 시민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노이 결렬 뒤의 무력감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속하기만 했다(관련 기사: 백악관 "현재로선 아무런 합의 이르지 못했다"... 서명식 취소 https://omn.kr/1hm3d). 하노이 회담 타결을 전제로 세웠던 출장 취재 계획은 모두 어그러졌고, 뭔가 취재를 하기도, 기사를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내가 상황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 건 아닌가', '어려운 일이 이번에 다 해결될 거라고 지나치게 희망을 가졌던 건 아닌가' 스스로 묻기도 했다. 곧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지금 보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그저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평화의 힘>을 읽으면서, 4년 여 전 그때를 복기했다.
 
 <평화의 힘>
ⓒ 메디치미디어
 
최 교수는 이 책을 '기록' 차원에서 썼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언제 무얼 했다는 식의 기록에 그치진 않는다. 정치학 교수답게 평화에 대한 이론부터 시작한다. 이론이 나오면 그 뒤엔 그 이론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이어진다. 책을 이렇게 쓰는 교수라면 강의 역시 흥미진진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대 관건이자 목표였던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 남북 군사합의가 왜 필요했는지, 종전선언이 왜 중요했는지 이론과 한반도의 실제 상황을 오가며 '기록'했다.

다시 걸어야 할 평화의 길 
 
▲ 남-북 정상 부부 입장에 환호하는 15만 평양시민 2018년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 이틀째, 당시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을 위해 입장하자 15만명 평양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 책을 읽고 나선 내 마음 속에 있던 어지러운 것들이 정리된 듯한 느낌이다. 하노이회담 결렬로 닥친 패배감과 무력감, 비핵화는커녕 '남북 대화 재개'라는 말을 언제 다시 기사에 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그저 방관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 조금씩 정리돼 가는 그런 느낌.

최 교수는 책에 "한반도의 평화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와 오늘날의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기억'이라니 당치 않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기억하고 추억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다시 시작해서 이뤄내야 할 목표다.

어쨌거나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국내 정치 상황은 물론이고 북한도 핵무력을 더 발전시켰고 법제화까지 해버렸다. 대외 여건도 훨씬 험난해졌다.

비록 전보다 후퇴하긴 했지만, 한번 가본 길을 다시 가는 건 훨씬 수월한 일이다. 전쟁 위기설이 돌던 한반도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됐다. 우리에겐 전쟁의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바꾸어 본 경험이 있다.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능라도 경기장에 모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평양 시민들 역시 여전히 평화를 갈구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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