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號 5년]"대표라고 불러주세요"…그룹 오너 아닌 지주사 대표 구광모, 시총 3배 늘려
계열사 CEO 자율경영 독려
눈에 띄는 실적 증가로 이어져
"대표라고 불러주세요".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건 구광모호(號)가 호실적을 내는 비결을 이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다. 구 대표는 LG그룹 총수지만 자신을 회장이 아니라 지주회사 대표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지주사 대표 일에 집중하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책임감을 갖고 업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이다.
구 대표가 취임한 2018년 6월 말 이후 LG 기업가치는 94조1000억원에서 260조원으로 3배가량 커졌다. 각 계열사 CEO가 조직 개편, 투자 같은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율경영'을 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LG전자의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가전 수요가 급감하자 작년 10월 말부터 비상경영 태스크포스(TF) '워룸(War-Room)'을 운영하고 있다. 조주완 CEO 사장이 사업별 과제와 대안 실행 과정을 직접 챙겼다. 워룸 운영 후 지난 1분기(1~3월) LG전자 영업이익은 1조4974억원으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삼성전자 6402억원을 제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27일 올라온 2분기 영업익 추정치(컨센서스)도 LG전자(9570억원)가 삼성전자(2015억원)보다 많다.
계열사가 강력한 위기대응 조직을 꾸리는 동안 그룹 전체 임원 회의는 간소화했다. LG는 구 대표 취임 후 5년간 분기 임원 세미나를 없애고 온라인 회의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CEO 회의 한 번에 임원 400명 이상이 모였는데 이젠 50명 미만이 참석한다. 회의 내용도 바뀌었다. 임원 보고를 들은 총수가 일방적으로 주요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토론 중심으로 회의를 하면서 과제를 풀어나간다. 총수가 '일방적 지시'를 하지 않고 힘을 실어주니 계열사 CEO들이 워룸 같은 조직을 과감하게 운영할 수 있다. LG 관계자는 "구 대표는 자신이 (계열사 CEO)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무책임하게 방관하지 않도록 (지주사) 대표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바뀐 조직문화 덕분에 LG 각 계열사 CEO 의사결정 권한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구 대표 취임 후 LG는 ▲LG전자 삼성전자 영업익 추월 ▲LG전자 전장(VS) 사업본부 26개 분기(6년6개월) 만에 흑자 전환 ▲LG에너지솔루션 분사 후 세계 이차전지 점유율 2위 및 일본시장 개척 ▲LG화학 시가총액 2배 성장 등 성과를 냈다.
구 대표 특유의 과감한 인사 정책도 취임 5년 만에 LG 내부에 실용주의가 빠르게 퍼진 비결로 꼽힌다. 외부 출신도 CEO로 과감히 영입했다. 글로벌 화학기업 3M 출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을 2019년 영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 부회장 영입 전까지는 'LG화학 수장은 기초소재 사업부문 화학공학과 출신 LG맨 출신 차지'라는 말이 돌았다. 신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승인된 2019년 3월15일 LG화학 시가총액은 26조1500억원이었다. 27일 종가 기준으로는 49조6300억원이었다. 4년3개월간 시총이 89.8% 증가했다.
사장급에서는 2019년 은석현 VS사업본부 사장을 보쉬코리아에서 데려온 점이 눈에 띈다. LG전자 내 만년 적자 사업으로 지적받던 전장(자동차 전자장치) 사업을 작년 2분기(4~6월) 26개 분기 만에 흑자로 바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LG엔솔, LG화학의 조(兆) 단위 해외공장 신설, LG엔솔 분사, LG전자 워룸 후 실적 증가 등은 계열사 CEO 자율 경영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구 회장이 힘을 보태줘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LG화학, LG엔솔, LG이노텍은 물론 LG전자도 기존 휴대폰 중심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이 아닌 수익성 높은 전기차 중심 B2B(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 바뀌고 있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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