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도 걸려 오는 배송 독촉... 서럽게 느껴졌다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구교형 2023. 6. 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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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사생활 포기한 '대체 불가 배달 기계'

[구교형 기자]

 배송할 물건을 받아 정리를 마치고 대개 오전 9시 반~11시쯤이면 배송지로 출발한다.
ⓒ 구교형
그게 무엇이든 현장 일은 힘들다. 택배 일도 그렇다. 내가 택배 일을 하면서 가장 속상하게 느낀 것은 단지 일이 힘들다는 게 아니다. 택배기사는 사생활이 없는, 대체 불가 배달 기계와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택배기사의 근무일은 월요일~토요일, 주 6일이며 오직 빨간 날(법정 공휴일)만 쉰다. 택배사마다, 대리점마다 다를지 모르나, 우리 경우 오전 6시 40~50분이면 벌써 작업장 레일 위로 그날 배송할 물건들이 돌기 시작한다.

기사들은 매일 레일 위에 쏟아지는 물품들의 주소를 보고 자기 물건을 찾아 스캔하고 트럭에 실어 정리한다. 그날 물건 개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물건을 받아 정리를 마치고 대개 오전 9시 30분~11시쯤이면 배송지로 출발한다. 10~20분 이동하여 그때부터 배송을 시작한다. 고객들은 이때부터 비로소 이미 피곤에 절은 택배기사들을 볼 수 있다.

요일마다 물량이 다르지만, 개인에 따라서도 배달개수가 다르다. 물론 그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 나처럼 나이가 좀 많거나 쉬엄쉬엄하고 싶은 사람은 물량이 적은 구역을 맡아 오후 3~4시경에 마치고 귀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젊은 기사들은 기본 배송 외에 회사나 기업의 대량 물량을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집화'를 한다. 그런 경우 저녁 7~9시까지 일하게 된다. 중요한 건 매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쉴 때는 거의 잠만 잔다. 피곤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요일 외에 휴일이 생기면 그전부터 맘이 참 여유롭다. 그러나 마냥 편하지는 않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쉬면 쉬는 대로 다음 날 복귀해 그냥 평일처럼 일하면 되는 게 아니다. 쉬는 날만큼의 물량이 그대로 쌓여있어 밀린 물량까지 함께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토)은 석가탄신일이라 쉬고, 28일은 일요일이라 쉬고, 29일(월)은 대체공휴일이라 연달아 사흘을 쉬었다. 쉴 때는 참 좋다. 그러나 평소보다 이틀을 더 쉰 죄로 그 주간은 죽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저녁 있는 삶'이라든가, 경조사나 편안한 외출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느끼기에 관공서나 은행은 너무 일찍 닫기도 하고 우리처럼 빨간 날은 다 쉬기에 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택배하면서는 식사를 거르기 십상이다. 돈이 없어서도, 꼭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일하다가 아무 데나 차를 세워놓고 편히 앉아 30여 분 동안 짬을 낸다는 게 아무래도 맘이 편하지 않다. 택배사들은 갈수록 총알배송, 당일배송, 무료배송, 새벽배송 등 서비스 경쟁을 선포하지만, 그럴수록 택배기사들은 죽어난다.

어떻게든 배송하고 집에 가서 앓는 게 불문율

배송하기에 주택가가 좋을까 아니면 아파트나 건물이 편할까?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물론 일단은 아파트나 건물이 좋긴 하다. 우선 주소 찾기 쉽고, 주차하기 좋고, 비교적 도로가 넓고 게다가 거의 엘리베이터도 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을수록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타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신도림역 옆에 테크노마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쇼핑, 식사, 문화생활을 위해 판매동에 가기도 하고, 사무동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늘 인파로 붐비기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엘리베이터를 옮겨 다니며 배송하느라 매일 전쟁을 치른다. 고층용, 저층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고, 일반인만 탈 수 있는 게 따로 있고, 아예 이용할 수 없는 제한 시간도 있다.

2015년 초년 시절, 며칠 지원을 나간 적이 있는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물건을 몇 층에 두었는지, 수레는 어디에 놓았는지, 어디를 가고 어디를 못 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당황스러웠다. 좁은 골목에서 집 찾느라 발품 팔고 다니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지금 구역의 한신IT타워도 1층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층마다 배송품을 떨어뜨려 놓고 가장 위 14층에서부터 다시 한 층씩 배송하며 수레를 들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온다. 1시간 안에 마치지 못하면 할인권 외 추가 주차요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급해진다.

그러나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택배기사가 가장 서러울 때는 자신이 빠지면 당장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반나절, 하루, 이틀쯤은 미리 양해 구하고 빠져도 주변 기사들끼리 물량을 조금씩 더 나눠 맡거나 대리점에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복잡해진다. 그래서 택배기사들은 움직일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나와 배송하고 집에 가서 앓는 게 불문율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이름 붙이길 '대체 불가, 배달 기계'다. 과장이 아니다.

코로나 기간이던 몇 해 전, 한 택배기사가 거의 쉬지 못하고 매일 엄청나게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다가 과로사했는데, 장례식장에도 걸려 오는 아들 전화의 배송 독촉을 아버지가 대신 받아야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고 내 일처럼 서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누가 아프거나 다쳐서 당장 급한 사정이 생기면 나처럼 이미 퇴직했지만 '경력과 실력'이 무난한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이 온다.

그런데 아픈 사람을 대신해 일을 나갈 때 사정을 알면 공분이 일어난다. 코로나 이후 이제 '아프면 쉰다'는 게 사회적 상식처럼 되었지만, 택배기사는 그저 컨디션이 나쁘고 몸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닌 부상이나 사고를 당해도 움직일 정도면 맘대로 쉬지 못한다. 대체 불가, 배달 기계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도 교통사고를 당한 기사가 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으로 보름 정도 일을 했다. 어느 아침, 어느 기사를 도와주라 해서 갔더니 이 기사는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신음소리를 냈다. 물어보니 일을 하다가 무거운 상자에 받혀 갈비뼈에 금이 갔단다.

작년 설 명절 무렵에도 갈비뼈를 다친 기사를 대신해 배송을 한 적이 있는데, 올해도 또 갈비라니! 그러나 더 심한 교통사고에 비해 갈비 골절은 상대적으로 '경미하기에'(?) 아파도 그냥 일한다. 사정을 알고 나니 더 안쓰러워 갈비 골절 기사의 물건을 실어주고 정리도 대신 해주었다. 나보다 거의 20살 아래인 젊은 동료라 더 애처롭다.

사람의 탐욕과 자본의 관성
 
 한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가 쌓여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갈비뼈 부러져 봤나? 난 20여 년 전에 부러져 봤다. 치료할 건 없는데 움직이면 아프고, 힘쓰면 더 안 되고 최소 한두 달은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 택배기사도 아프면 물론 병원에 간다. 그리고 "당분간 힘든 일 하지 말고 푹 쉬어라,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는다. 우리에게는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진통제 먹고 그냥 버티며 또 물건을 들어 올린다.

화성의 영상까지 송출하고 드론으로 못 하는 게 없다는 첨단 21세기에도 작동되는 노동 실화를 아는가? 최소한 아픈 사람, 다친 사람은 쉬게 하자. 매일같이 중계방송되는 정치인들의 권력과 자리다툼, 종교인들의 그럴듯한 훈계를 보노라면 짜증이 난다. '삶의 체험 현장'처럼 단 며칠만이라도 현장 일을 해봐야 한다.

현 정부가 노조 폭력을 없애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장애인도 사람이니 최소한의 이동권, 자립, 주거 등을 보장해 달라며 요구한 예산의 달랑 1.1%만 반영해 놓고 이를 항의하는 승차 시위에 대통령,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불법", "탈법", "법대로"를 외치며 장애인들을 불순세력으로 내몬다.

긴 얘기 필요 없다.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적이 있거나, 앞으로라도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장애인들 시위를 욕할 자격이 없다. 2001~2002년 중증 장애인들이 자기 몸에 쇠사슬을 묶어가며 전동차 앞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겨우 설치된 것인데, 지금은 장애인들만 아니라 노인, 임산부, 환자, 그리고 얼렁뚱땅 누구나 이용하는 '당연한' 편의시설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정말 힘든 사람들 사정은 '쫌' 생각해 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런 정치, 그런 종교, 그런 나라! 사람의 탐욕과 자본의 관성은 쉬어야 할 사람을 쉬지 못하게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주일의 하루는 자기 자신만 아니라 이웃과 나그네, 심지어 일을 부려 먹는 가축들까지 쉬게 하라며 '안식 선언'을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주일)은 종교 축일 이전에 인간 해방일이다.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명기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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