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넘어 ‘귀공자’로… 강태주라는 발견 [쿠키인터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신인배우 강태주의 지난날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다. 1980대 1 경쟁률을 뚫고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 주연 자리를 꿰차기까지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쳤다. 탈락한 오디션만 100개가 넘는다. 고배만 마시던 그때, 네 차례에 걸쳐 오디션을 봤던 ‘귀공자’ 팀에서 낭보를 들었다. 마르코 역이라는 말에 그는 소리부터 질렀다고 한다. “한창 낙심할 때 합격 전화를 받은 거예요.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고… 믿기지가 않았어요.”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강태주는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감격스럽다는 듯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요즘 강태주는 장밋빛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귀공자’와 강태주를 검색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그의 새로운 일상이다. ‘영화 보고 강태주가 누군지 찾아봤다’, ‘생각보다 연기를 잘해서 놀랐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짜릿함을 만끽한다. 그에게 ‘귀공자’는 동아줄 같은 작품이다. 절박하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서다. 그는 마르코를 “죽을 각오로” 준비했다. 복싱 문외한이던 그는 두 달 만에 프로급 실력을 갖추기 위해 실제 선수들과 같은 훈련을 받았다. 복싱선수 특유의 잔근육 잡힌 날렵한 몸을 완성하자 “비로소 마르코에 가까워졌다”는 확신을 느꼈다.
극에서 마르코는 이리저리 뛰고 구른다. 코피노인 그는 아픈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인간 투견 생활을 하고, 범죄에 가담하라는 유혹에 흔들린다.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한국으로 향하자마자 의문의 추격전에 휘말려 온갖 고초를 겪는다. 아스팔트 도로부터 좁디좁은 골목길과 숲 속을 마구 내달린다. 극한 상황에 몰린 그는 다리 위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고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전력으로 뜀박질한다. 그는 “두려워할 여유도 없었다”면서 “구르고 달리는 장면은 몸으로 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강태주에게 ‘귀공자’ 촬영장은 배움터이기도 했다. 김선호, 김강우 등 선배 배우들과 함께하며 연기의 맛을 느낀 순간만 여럿이다. 극 중 한이사(김강우)에게 마르코가 잡히는 장면을 촬영할 땐 실제로도 무력감을 느꼈단다. “상대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는 연기에 감탄했다”고 말을 잇던 그는 “분위기를 풀어준 김선호 선배와 카리스마로 현장을 이끈 김강우 선배 덕에 장면들을 더 잘 소화했다”며 고마워했다. 여전히 ‘귀공자’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액션 외에도 마르코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마르코는 거친 생활로 날이 바짝 선 인물이에요. 그런 마르코가 아버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린 양처럼 변해요. 감정적으로 무너졌으니까요. 어딘지도 모르는 이국땅에서 얼마나 혼란스럽고 서러웠겠어요. 필리핀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마르코가 무력해진 먹잇감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앞으로의 마르코가 어디로 나아갈지를 생각했죠. 슬퍼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넘어 해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더 잘 살아가려 할 것 같았어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로 인한 생존욕구가 강하잖아요. 스스로에게 ‘마르코라면 어땠을까’ 질문하곤 했어요.”
가족들의 응원은 강태주를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다. “마르코처럼 저 역시도 가족을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하던 그는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영화를 본 할머니가 ‘잘생긴 우리 손자 얼굴을 왜 이렇게 해놨냐’고 하시는데 정말 웃긴 거예요. 근데 또 눈물은 나고…. 작은 역할만 나와도 좋아하던 가족들이 이번엔 제가 많이 나온다며 기뻐하시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친구들도 시사회에 초대했거든요? ‘너 많이 나오더라’하길래 이렇게 말했죠. ‘그래서 너희를 부를 수 있던 거야’라고요. 하하.”
대학 시절 미디어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그는 대외활동으로 모델 일을 접하고 연기에 뛰어들었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궁극적인 종합예술이 연기라고 판단해서다. 의경으로 복무하며 주말마다 연기학원을 다니며 조금씩 꿈을 키워갔다. 막연히 도전한 배우 생활은 회사 계약 불발부터 오디션 낙방까지 온갖 실패담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던 건 연기하는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기를 사랑해서 더 힘들었어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해서 오히려 그만둘 수 없었죠. 아직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거든요. 조금씩 거뒀던 작은 성취와 그간 함께한 감독님들이 보내준 믿음을 생각하니까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태주는 그래도 해내는구나’라는 말에 더 힘을 냈어요.”
스물여덟에 만난 첫 주연작. 강태주는 새로운 장르와 역할을 찾아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마르코로 나만의 감성을 보여준 것 같다”고 자평한 그는 “이제는 믿음에 부응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연기 지망생 시절 tvN ‘미생’과 영화 ‘형’(감독 권수경) 속 임시완과 도경수를 보고 꿈을 키웠다는 강태주는 “선배들의 내공을 따라 좋은 연기를 해내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연기로 놀라움을 드리고 싶어요. 한 작품의 캐릭터보다 실재하는 인물로 보이는 게 새로운 목표입니다. 그런 연기를 해내면 언젠간 할리우드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귀공자’라는 꿈을 이뤘으니 이제는 꿈을 더 크게 꿀 거예요. 그동안 ‘태주는 잘 될 거야’라고 응원 받을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좋게 봐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더 기대에 더 부응할 거예요. ‘우리 태주 잘했다’는 말을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습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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