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지구 차원으로 확대된 시진핑의 야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란초미라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중국 대외 전략인 ‘신형 대국 관계’를 제시했다.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과 충돌을 빚었지만 미·중은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협력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서로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자는 뜻도 담겼다. 중국몽을 외치며 국제 무대에 등장한 시 주석은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통역만 대동한 채 오바마 대통령과 산책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 회담은 중국에서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1972년 방중에 비견될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10년이 지난 2023년 6월.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일행을 맞았다. 그사이 미국 대통령은 두 번 바뀌었지만 시 주석은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1인 독주 체제를 완성했다.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듯 시 주석은 미·중 양측 인사들이 마주한 대형 테이블 상석에 앉아 “넓은 지구는 중국과 미국이 각각 발전하고 함께 번영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중·미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고 했다. 10년 전 발언과 같은 맥락이나 광활한 태평양이 넓은 지구로 바뀌었고 양국 관계를 인류 운명과 연결시키는 등 스케일이 커졌다.
중국 경제는 외형상 꾸준히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 9조5704억 달러에서 2021년 17조7340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6조8431억 달러에서 22조9961억 달러로 증가해 양국 격차가 줄었다. 코로나 봉쇄 3년을 겪으면서 각 기관이 시기를 뒤로 늦추는 분위기지만 대략 2030년을 전후해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미국은 중국을 ‘국제질서 재편 의도를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커진 국력만큼 위상이 높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반대와 이견이 허용되지 않는 꽉 막힌 나라가 됐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 학자들의 SNS가 차단되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중국 사람들은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한다. 각국 외교관들은 중국 공무원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약속을 잡아도 갑자기 취소되는 일이 빈번해졌는데 중국 공직사회 분위기가 상부에서, 중앙에서 부르면 이유 불문하고 달려가야 하는 식으로 경직된 탓이 크다고 한다. 중국에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중국 특색 사회주의, 애국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무력과 보복을 앞세운 중국식 늑대 외교는 날로 거칠어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중국 관영지의 한국 때리기는 도를 넘었다. 관영 매체는 최근 한국 항공사가 여객 수 감소로 일부 노선 운항을 일시 중단하기로 하자 “승객이 적은 배경에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며 한국 정부 탓을 했다. 또 “면세점에서 중국인들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관광지로서 중국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고 지문 등록 등 비자 신청 절차가 번거로워 중국을 찾는 수요가 줄었다는 건 언급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 인권 탄압 등을 지적하면 ‘불에 타 죽을 것’ 등의 표현을 써가며 격하게 대응한다. 이런 식의 외교로는 다른 나라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지구는 미국과 중국의 번영을 모두 포용할 만큼 넓고, 두 나라 관계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때 이른 감이 있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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