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공은 모두에게 똑같이 튀어야 한다
여수 추도의 화장실도 없는 집
참혹한 차이… 변화는 올까
여기 두 개의 장소가 있다. 한 곳은 서울 강남 중심. 위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반포니까. 굳이 친절을 베풀어 한마디 더 보탠다면, 쉐라톤 서울 팔래스 호텔이 있던 자리라고 하면 된다. 호텔은 작년에 문을 닫고 부지는 매각됐다.
또 한 곳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추도. 긴 설명이 필요하다. 연면적 0.04㎢의 작은 섬. 그래도 무인도는 아니다. 5가구가 산다. 배가 다니지 않는다. 2020년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가 개통되며, 추도에서 인접한 섬 낭도까지는 다리가 놓였다. 추도에 가려면 낭도까지 차로 이동해 낭도 아래 섬 사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그리고 사도에서 추도까지는 낚싯배를 빌려야 한다. 다리가 개통되며 일대 섬 관광객이 늘었다. TV 프로그램 ‘1박2일’에서도 추도 편을 방영한 덕분에 섬에 관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추도에는 무려 1700개가 넘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천연기념물로 등록돼 있다. 해안에는 신비한 퇴적암 바위가 늘어서 있고, 마을에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돌담이 남아 있다. 옛 풍광과 자연을 간직한 남쪽 바다 작은 섬은 얼마나 싱싱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울 것인가? 퇴적암층을 바라보며 공룡들이 무리지어 놀던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여유롭고 황홀한 일일까? 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추도에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아, 다리도 배도 없는 섬은 소외 그 자체일 것이다.
서울 반포의 그곳에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 홍보에 의하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미국의 유명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에 참여한다. 최소 100억원대. 그보다 3~4배에도 이르는 분양가를 주고 이런 곳에 사는 이들이라면 가구당 5대의 주차 공간은 기본. 온갖 서비스 시설이 조성되는 소셜 클럽도 필수다. 6월 초, 이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홍보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내 광고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이렇게 놀랄 만한 카피는 처음일 것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건설광고라면 나도 꽤 한 편인데다 건설광고 특유의 허세와 차별에 대한 욕망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 충격에 할 말을 잃고 있을 그즈음 추도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역시 충격적. 워낙 작은 섬이라 나 같은 도시 사람은 버틸 수도 없이 열악한 주거환경임을 감안하더라도, 세상에! 추도 주민들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집마다 개별 정화조를 묻을 수 없어 나이든 주민들이 공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관광객용 화장실은 이미 설치돼 있는데, 주민들 집에 오수정화시설을 연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말문이 막혔다. 섬 주민의 화장실이 경제성이 있으려면 대체 어때야 하는 건가? 돌담이 그렇듯 ‘도서 지방의 생활사와 주택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라도 돼야 한다는 걸까?
광고 잘하기로 소문난 나이키는 2017년 평등 캠페인을 펼쳤다.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였던 시절. 홈페이지에 다양한 스포츠 스타들을 모델로 한 흑백 영상을 공개했다. 카피는 이랬다. ‘공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튄다. 평등에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The ball should bounce the same for everyone. Equality should have no boundaries).’
인간 역사에 평등이 실현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인간 세상과 기업의 실상이 뭐든 광고는 최소한 불평등을 꿈꾸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경제성과 상관없이 2020년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집에 화장실쯤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반포와 추도, 이 두 장소의 차이,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면 너무 참혹하다. 나이키가 고른 광고의 배경음악 ‘A Change is gonna come’처럼, 변화는 올까?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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