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생사의 전쟁터, 최전방에서

2023. 6. 2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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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백화점 나들이를 갔는데 어디선가 '교수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밖에서 나를 부를 때는 대개 '저기요' 아니면 '아저씨'인데, '도대체 누구지' 하고 돌아보니 나에게 소아암으로 치료받았던 아이다.

치료 도중에 네 번이나 재발했는데, 네 번째 재발했을 때는 '이 멋진 아이를 잃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절망적이고 두려웠다.

1~2주만 지나도 회복이 불가능할 상황이어서 응급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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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지난 주말 백화점 나들이를 갔는데 어디선가 ‘교수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밖에서 나를 부를 때는 대개 ‘저기요’ 아니면 ‘아저씨’인데, ‘도대체 누구지’ 하고 돌아보니 나에게 소아암으로 치료받았던 아이다. 이제는 치료를 다 끝내고 훤칠한 청년이 돼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와이프가 묻는다. “누구야?” “응, 내가 치료했던 애야.” “애가 어디 있어? 이분 아이를 당신이 치료했어?’’ 의아해하는 와이프에게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교수님께 치료받았어요.” “이분이? 뭐야, 당신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데.” “그럼, 나보다 더 건강해야지. 얼마나 열심히 치료받았는데.”

의학의 여러 전문 분야 중에서 내가 선택한 종양 분야는 생사의 전쟁터에서도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의대에 진학한 건 아니었고,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중증 환자 진료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픈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고, 이왕 할 거면 정말 많이 아픈 애들을 치료해 보자는 생각으로 소아청소년 종양 분야를 선택했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애써 배운 의학 지식을 꼭 필요한 일에 써 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천사 같은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들과 매일매일 혈투를 벌이는 최전방에 서 있게 돼 버렸다.

중증 환자 진료는 늘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소진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 의료를 뒷받침하는 국내 의료환경이 열악해 더욱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이 피 튀기는 생사의 전쟁터에서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다.

외래 진료가 시작되자 반가운 얼굴들이 한 명씩 들어온다. 훤칠한 25세 청년이다. 고등학생 때 악성 림프종으로 치료를 받았던 아이다. 치료 도중에 네 번이나 재발했는데, 네 번째 재발했을 때는 ‘이 멋진 아이를 잃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절망적이고 두려웠다. 마침 당시에 막 새로 나온 신약을 유럽에서 급히 구해와 투약하고, 이어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고 나니 기적처럼 말끔히 나았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해외 파견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간을 꽉 채우고 있는 종양에 폐 전이까지 있었던 9세 남자아이는 간 이식과 다섯 번의 폐 수술, 15번 넘는 항암치료를 받은 후에 모든 치료를 마치고 씩씩한 반장이 됐다. 유치원 때 급성 백혈병으로 치료받았던 꼬마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돼서 찾아왔다. 학교 대표 럭비 선수라고 하는데 나보다 덩치가 더 크다.

이어 들어온 네 살 여자아이는 두 살 때 척수 종양이 급격히 진행해 며칠 만에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왔었다. 1~2주만 지나도 회복이 불가능할 상황이어서 응급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동안 아이 발가락이 다시 꿈틀대고, 이어 다리가 움직이고 아이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지금은 치료를 다 끝내고 유치원에서 제일 잘 뛰어다니는 개구쟁이 꼬마가 됐다. 아이는 이미 진료실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아이 아빠가 진료실에 남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연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20년 뒤를 상상해 본다. 자칫했으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아이의 소중한 미래에 아이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돼 할아버지가 된 나를 반갑게 부르며 뛰어온다. 비록 멀리 바라보며 큰 꿈을 가지고 의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삶의 초기에 꺾일 수도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는 귀한 일을 하게 됐다. 행운이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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