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회 속 아동 지원 캠페인, 공동체를 변화시키다
우간다 동부 카물리·서부 포트포탈 지역을 가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우간다 동부 카물리 지역에 살고 있는 사누파(14·여)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포장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5시간 넘게 가야 했고, 마을들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해 목적지로 가는 길이 마치 ‘미로’처럼 느껴졌다. 도중에 같이 가는 일행들과 길이 엇갈려 적잖게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누파를 만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사누파의 집으로 보이는 거처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흥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누파의 어머니가 우간다 특유의 환영 인사로 손님맞이를 해준 것이다. 정귀석 주평강교회 목사 부부와 희망친구 기아대책 박찬욱 우간다 지부장 등은 환한 미소와 한국식 인사로 화답했다.
성 문제 늪에서 건네진 희망의 손길
어머니 뒤편으로 사누파가 보였다. 6명이나 되는 사누파의 동생들도 그 주변에 있었다. 생김새와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낯선 이들을 봤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어머니와 달리 경직되고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문한 일행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며 사누파와 동생들의 경계심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손을 잡고 포옹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일행은 사누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 안마당에 둘러앉았다. 그는 부탈레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창 잘 다니던 학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약 2년 간 문을 닫았다. 이것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학생들은 교육과 보호, 급식의 기회를 상실했다. 사누파는 매우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 반항적으로 변했고, 특히 남자아이들과의 심각한 성적 문제까지 유발했다.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때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준 곳이 기아대책이다. 기아대책은 2021년부터 사누파가 속한 부탈레 초등학교에서 ‘CFCT SRHR’(Child Focused Community Transformation Sexual & Reproductive Health & Rights)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는 ‘아동 중심의 공동체 변화, 성과 건강과 권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아동을 중심으로 한 사업을 통해 공동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 내에서 보건 교육, 성적 권리 및 가정 폭력 문제를 일깨우고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이어졌다. 젠더를 주제로 교사들과 동성인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그룹 토론의 시간을 가졌고, 여학생들의 월경·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대를 만드는 시간도 가졌다.
수개월 간 진행된 프로그램은 효과를 발휘했다. 사누파는 성적 문제가 치유된 것은 물론 본인이 직접 나서서 다른 어려운 친구들을 상담해줬다. 나아가 교사들과 함께 그룹을 이끄는 소녀 리더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사누파의 어머니는 “사누파는 이제 모든 형태의 여아 차별에 대한 학생 상담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학업 참여에도 열심인 아이가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누파의 장래희망은 의사다. 이유를 묻자 그는 “주변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의사가 돼 주변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화를 마칠 즈음 정귀석 목사가 사누파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주님, 우리 사누파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시고 그 가정에 무한한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소망을 이뤄주는 하나의 밀알
일행은 우간다 서부의 포트포탈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주니어(12)라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주니어의 집은 ‘르웬조리’라는 높은 산속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산행을 해야만 했다. 고지대이면서 지형이 매우 가팔랐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힘겹게 산 정상 부근에 이르렀을 때 주니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큰 아픔을 겪었다. 약 5년 간 의붓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는데, 끊임없는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열한 살이 됐을 때 주니어는 학대를 못 견디고 가출했다. 하지만 때마침 내리던 폭우에 휩쓸려 1㎞를 떠내려가다가 한 남자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지난해 11월 주니어의 이모는 의붓 아버지를 피해 주니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등교시켰다. 그러나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늘어나는 학비까지 감당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이 지역에 도입될 예정인 기아대책의 CFCT 프로그램은 한줄기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니어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적절한 교육 지원을 받게 되면 그녀의 장래희망인 교사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주니어의 이모인 냥고마쥬니퍼는 “절망적인 상황을 딛고 현재 주니어는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 있다”며 “다른 건 몰라도 학용품만이라도 지원된다면 공부에만 전념해 교사의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한 아동교육 지원에 초점
2017년부터 시작된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CFCT’ 프로그램은 가장 취약한 지역사회의 아동과 가정, 교회, 공동체가 서로 협력해 공동체 전체를 위한 아동교육 지원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해당 지역의 영적 사회적 경제적 건강성을 측정하는 척도로 두고 있기도 하다.
해당 프로그램은 우간다 동부 카물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카물리 지역 아동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노동으로 인해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함에 따라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성 의식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미성년자들의 임신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2021년 기준 15~19세 사이의 임신 여성은 1만 명에 육박했다.
이에 기아대책은 필수적인 교육 지원과 더불어 아동들의 성과 관련된 교육을 지원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우선 공립학교에 급식과 학용품 등 필수 인프라를 지원하고 일반적인 교육을 담당할 교사 훈련도 실시한다. 아울러 성위생 교육교사 양성과 임신한 여아를 위한 출산 및 영양, 직업교육 등을 지원한다. 월경 기간에 이용 가능한 학교 내 위생 시설도 구비해주고 있다.
이미 프로그램이 정착된 카물리 지역과 달리 우간다 서부 포트포탈 지역은 앞으로 프로그램이 정착될 곳이다. 이 지역의 취학 연령 아동들은 총 1만2000명인데, 실제로 재학 중인 아동들은 5206명(42%)에 불과한 상황이다. 학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학교를 가기 위해선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먼 거리를 가야만 하기 때문에 재학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기아대책은 아동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CFCT 프로그램을 도입 중에 있다. 박찬욱 기아대책 우간다 지부장은 “학교 건축, 점심급식 제공, 산에서 학교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인도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카물리·포트포탈(우간다)=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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