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중 목사의 선교적 삶] ‘관대한 정의’를 행하는 삶

2023. 6.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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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적 전쟁을 일으킨 지도 7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켈러 목사는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돌보며 보호하는 분이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 역시 사회·경제적 약자를 사랑하고 돌보는 삶, 즉 '관대한 정의'(Generous Justice)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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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적 전쟁을 일으킨 지도 7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전쟁 후 폐허가 됐던 대한민국은 하나님 섭리의 손길과 은혜로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또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부강한 나라가 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민족이 물질적 풍요로움에 빠져 정신적 타락과 함께 부정과 부패의 냄새가 이 사회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심지어 10대 청소년이 마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기성세대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졌다. 온 나라가 물질적인 타락과 부정과 부패, 정신적인 피폐함에 무너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구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선지자 미가를 통해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삶을 살면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여기서 정의는 ‘미쉬파트’라는 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팀 켈러 미국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 목사는 그의 책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단어에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저마다 고유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신분 여하에 상관없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또는 권리)을 주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다.

힘과 돈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해서 법을 어겨도 상관없는 사회는 정의가 무너진 사회다. 특별히 못 배우고 가난하며 힘없는 사람들이 권세 있고 지식도 있으며 돈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몫과 권리를 빼앗기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사회는 더욱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시 68:5)이란 사실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미쉬파트)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시 146:7, 9)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미쉬파트)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신 10:18) 분이다.

켈러 목사는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돌보며 보호하는 분이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 역시 사회·경제적 약자를 사랑하고 돌보는 삶, 즉 ‘관대한 정의’(Generous Justice)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진정 ‘의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라면 우리는 모든 백성에게 돌아갈 몫이나 권리를 빼앗는 이 사회의 부정과 힘 있는 자의 비리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 정의가 이 땅에 바로 세워지기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또 하나의 선교적 삶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진정 원하는 것은 1000마리의 짐승을 한꺼번에 드리는 웅장한 일천 번제(燔祭)가 아니다. 천천의 숫양도,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도 아니다.(미 6: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하는 것, 즉 관대한 정의를 이루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주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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