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하는 AI 집사가 온다”
메타버스의 미래…코엑스 ‘메타버스 엑스포 2023’ 가보니
꼭 2년 전이다. 어느 통신사 대표와 만나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뜨거웠던 메타버스에 대해 묻자 이런 심드렁한 답변을 들었다. 의외였다. 정보기술(IT) 기업이 아니어도 메타버스라고 하면 다들 한 자락이라도 끼려고 아우성을 칠 때였다. 그 대표는 얼마 전 회사에서 물러났다. 메타버스에 대한 그의 비관론은 맞는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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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버스 비관론에도 행사 성황
막강 비서 역할 수퍼앱 등장 기대
마크 저커버그에 영감 준 전문가
“과대선전 줄었을 뿐 계속 성장”
생성형 AI에 메타버스 결합하면
인터넷 생태계 세 번째 큰 변화
」
# 지난 14일 ‘메타버스 엑스포 2023’이 열린 서울 코엑스 C홀.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특수 의자에 앉아 롤러코스터를 타는 체험객이 비명을 질렀다. 다른 편에선 복싱 장비와 VR 기기를 착용한 어린이가 허공에 주먹을 연달아 내지르며 격전을 치르고 있다. 경기도 하남에서 온 벤처기업 트라운드의 박재범 대표는 360도 스피커에 진동까지 느낄 수 있는 사운드체어를 전시 중이었다. 잠깐 사운드체어에 앉아서 영화를 봤더니 정말 실감 났다.
사람이 많이 몰린 곳은 롯데정보통신의 자회사 칼리버스 부스였다. 사물의 빛 반사까지 구현하는 실사형 메타버스 플랫폼의 PC 버전이 공개됐다. 3차원(3D) 모니터와 VR 헤드셋으로 K팝 공연도 즐길 수 있었다. 현장 직원은 “3D 모니터의 카메라 센서가 관객의 시선을 인식해 별도의 기기를 착용하지 않고 맨눈으로도 3D 콘텐트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VR 헤드셋을 쓰고 걸그룹 엔믹스의 공연을 감상했다. 아이돌이 나하고 눈을 맞추며 춤추고 노래했다. 나만을 위한 콘서트가 있다면 이런 건가 싶었다.
애플의 비전 프로, 시장 커질 것
# 애플이 이달 초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처음 공개하고 내년 초 출시를 예고한 ‘비전 프로’는 박람회에 전시되지 않았다. 애플이 착용형 공간 컴퓨터로 규정한 비전 프로는 스키 고글처럼 머리에 착용하고 컴퓨터나 아이폰에서 하는 컴퓨팅 기능을 3D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기기다. 3499달러(457만원)의 비싼 가격 탓에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애플이 하는 것이니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코엑스 현장 강연에서도 비전 프로 얘기가 나왔다. IT 전문가인 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은 “비전 프로가 눈동자를 인식하고 무릎 위에 올린 손의 움직임까지 인식하는 등 사용자 접점(UX/UI)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아직 비전 프로를 출시하지도 않았는데 애플은 벌써 2세대 버전 개발에 착수했다. 김 부사장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애플은 언제나 1세대, 2세대 제품에선 인기가 없다가 3세대부터 인기를 얻었다. 아이폰도 그랬다. 삼성전자 같은 경쟁사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싸지고 시장도 커졌다. 비전 프로도 그럴 것이다.”
한때 주목받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다소 시들해진 건 사실이다. 특히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이 급부상하면서 메타버스 회의론이 번졌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못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도 메타버스 콘텐트 수요가 늘지 않았다는 실망감도 작용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관련 사업을 줄이거나 정리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온 게 불과 석 달 전이다. 월트디즈니나 MS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에 엄청나게 투자하며 회사명까지 바꿨던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플랫폼(메타)마저도 메타버스 사업 조직을 줄였다.
메타버스 퇴보로 오인하지 말아야
『메타버스 모든 것의 혁명』의 저자 매튜 볼은 이달에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담담하게 적었다. 매튜 볼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회사명을 메타로 바꾸는 데 영감을 준 인물로 유명하다. “2023년에는 확실히 메타버스를 둘러싼 과대 선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를 퇴보로 여기거나 진전이 없는 상태로 오인해선 안 된다.…지금도 메타버스는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급증한 대규모 언어 모델(LLM) 챗봇과 생성형(generative) 아트 플랫폼, 생성형 환경 엔진, 인조인간 같은 AI 등 AI 솔루션의 발전은 메타버스의 성장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박람회에서도 전문가 다수가 메타버스와 AI의 시너지에 큰 기대감을 표했다.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메타버스 라이즈(rises), GPT 엔진을 달다’는 강연에서 챗GPT 같은 생성AI 덕분에 메타버스의 제작방식이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해 자신이 원하는 메타버스를 스스로 만드는(Text to Metaverse) 도구가 나오고, 2D 이미지를 3D로 변환하는(Image to 3D) 등 더 쉽고 빠르게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챗GPT와 연동해 아바타나 로봇을 움직이는 상호작용 방식도 진화했다. 한 마디로 AI 덕분에 메타버스가 더 빠르게 진화한다는 거다.
김지현 부사장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자비스 같은 개인비서가 메타버스의 수퍼앱이 될 것이다. 챗GPT 같은 자비스가 메타버스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자비스는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토니 스타크의 AI 집사다. 김 부사장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하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 그는 『3번째 세상 메타버스의 비즈니스 기회』에서 메타버스를 웹과 모바일에 이은 인터넷 생태계의 3번째 큰 변화라고 요약했다.
“한국서 뛰어난 메타버스 기업 나올 것”
매튜 볼은 “앞으로 10년, 실리콘밸리를 뛰어넘을 기업이 한국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기술과 서비스, 장치 대부분이 한국 기업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라며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성취”라고 평가했다. 한국판 서문에 쓴 글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들어야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는 한국의 메타버스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기술의 역사에서 언제나 극소수의 위대한 승자 뒤에는 절대 다수의 보이지 않는 패자가 있었다”며 냉정한 기술 경쟁이 불가피함도 얘기했다.
“가상의 자산이 현실의 자산을 압도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경제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혼란과 전환이 불어 닥칠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의 혁신에는 그 어떤 자비도 감정도 들어 있지 않다. 변화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무리 사정이 딱할지라도, 정거장을 지나친 버스가 유턴해 돌아올 일은 없다.” 메타버스든, 뭐든지 간에 버스를 놓치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 “연 30% 고성장…2025년 세계 시장 3940억 달러”
「 메타버스라고 하면 가상·증강현실(VR·AR)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메타버스의 개념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예전보다 개념이 더 확장됐다.
정부가 지난 3월에 발표한 ‘메타버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 규제혁신 방안’에서는 메타버스를 “현실과 가상을 잇는 디지털 전환의 집약체”이며 “VR·AR,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디지털트윈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집약된 미래 신산업”이라고 설명했다. 메타버스의 정의가 이랬다. “①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②사람 또는 사물이 상호작용하며, ③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기술·서비스 발전에 따라 메타버스의 개념도 계속해서 진화·확장 중이다.”
즉, 가상과 현실이 섞여 있으니 경계가 사라진 공간이고, 상호작용을 하니 다양한 주체 간 소통이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며, 새로운 가치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세계다. 이를테면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전 세계 개발자는 1050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크리에이터로는 250만 명이 활동 중이다.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큰 폭으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9월 딜로이트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이 2021년 1220억 달러에서 2025년 3940억 달러로 연평균 3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메타버스 신산업 분야에 선(先)허용-후(後)규제를 원칙으로 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적용할 제도가 불명확할 경우엔 유연하고 혁신 친화적인 민간 중심의 자율 규제를 도입한다. 산업이 초기 단계임을 고려해 최소규제를 적용해 기술·서비스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산업 진흥·육성을 위해선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메타버스의 법적 정의를 분명히 하고 기본계획 수립, 전문인력 양성 등을 위한 메타버스 산업 진흥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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