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없으면 보내줘" 환자 요청…의사는 "호흡기 못 뗍니다",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60대 폐암 환자 A씨의 암세포가 뇌·간·림프샘 등으로 전이됐다. 항암치료·전뇌(全腦)방사선치료 등을 수차례 받았다. 그래도 병세가 나빠져 의식이 떨어지고 전신 경련 증세를 보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기도(숨길)를 유지하기 위해 기관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검사에서 뇌와 뇌막 전이, 간질 발작 등이 확인됐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3주가량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은 말기로 판단해 추가 암 치료나 중환자실 치료가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관절개(목에 기관과 통하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 관을 삽입)를 해서 간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요양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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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의료중단 5년…곳곳 갈등
말기-임종기 딱딱 불명확한데
임종과정에만 중단 가능
"구분 없애 환자 고통 줄여야"
」
"의식 없이 누워만 있으면 그때는 편히 보내줘."
A씨는 평소 이렇게 갈망했다. 그의 아내는 그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요양병원으로 가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누워만 있을 텐데, 그건 의미가 없다. 간이 호흡기를 단 환자는 호스피스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며 의료진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다. 난감한 건 의료진이었다. "현행법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없어요."
의료진은 "말기 암이긴 하지만 활력 징후(체온·심장박동 등이 정상)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고, 중환자실에서 나가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얼마 동안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고 보호자를 설득했다. 남편의 뜻을 존중하려는 아내, 법 준수를 내세운 의료진,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었다. 중환자실의 밝은 불빛, 기계음, 인공호흡기의 고통 속에 며칠이 흘렀다. 환자는 일주일가량 지나자 급격히 나빠졌고 이내 숨졌다.
내뜻대로 마무리하려면 병원에 가면 안 돼
의료진이 거부한 이유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때문이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말기와 임종과정으로 구분된 현행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말기는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이 나온 환자를 말한다. 임종과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이다. 말기환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환자일 때만 가능하다.
법이 애매해 윤리 갈등이 빈번하게 생긴다. 이런 경우 의료기관윤리위원회(법조계 등 외부인 참여)에서 논의한다. 서울대병원 임재준·유신혜 교수 연구팀은 2018~2021년 위원회 안건 60개 사례를 분석해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JKMS) 최근호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중 40건이 임종과정에 접어들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두고 의료진과 보호자, 보호자와 보호자 간에 의견이 충돌했다는 뜻이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에게 물었다.
Q : A씨의 상태가 어땠나.
A : 신체 활력징후가 있어서 말기환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Q : 환자 아내 요구 거절 이후 얼마 안가 숨졌는데 왜 임종환자가 아닌가.
A : 결과적으로 그리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시 '수일 내 사망'이라는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말기환자와 임종환자가 칼로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Q : 아내 요구대로 했다면.
A : 법 위반이다.
Q : 연명의료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 병원에 오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집에서 감당할 수 없으니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다.
말기-임종기 구분 외국엔 없어
연명의료 중단제도(일명 존엄사)가 시행된 지 5년 지났다. 27일 현재 29만702명이 중단(유보)하고 세상을 떴다. 연명의료 행위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며 유보는 이런 걸 아예 시작하지 않는 걸 말한다. 5년 새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를 바라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국민신문고·국민생각함이 지난해 9,10월 6200명에게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물었더니 47.7%가 '말기환자까지 중단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야'라고 답했다. 18.1%는 '말기 이전에도 허용해야'라고 답했다. 지금처럼 '임종환자에게 허용'은 34.2%에 불과했다. 중단 시기를 앞당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행 법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담지 못한다. 유신혜 교수는 "말기 단계에서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요구하는 사람이 늘지만 반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고윤석 교수는 "말기와 임종과정으로 구분하다 보니 말기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우선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 임종과정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중단한다. 연명의료에 노출돼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 교수는"말기와 임종과정을 구분하는 나라를 외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도 "현행법은 연명의료 중단에만 맞춰져 있다. 연명의료 결정 이행자의 90%가 유보한 경우인 점을 감안하면 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고윤석 교수는 "현행 법률에서 '임종과정 환자'를 삭제하고, 말기에서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되면 A씨의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거나 제거할 수 있다.
환자단체는 신중하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 후 경제적 이유 등으로 남용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연명의료 결정 이행 시기 확대를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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