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올라브 하우게, ‘어린 나무’
하우게는 노르웨이의 울빅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원예학교에서 공부하고 평생 정원사로 살았다. 매일 허리를 구부려 농장일을 하다 문득 시를 썼을 것이다. 그런 장소에서 그런 일을 해온 시인의 시는 고요하기 그지없다. 우선 사람이 등장하는 일이 드물다. 시인이 홀로 있다 해서 고독이 배어 나온다고 예측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적요가 주는 풍요가 행간에 가득하다. 도시생활자라면 오래 망각해온 유형의 풍요일 것이다.
하우게의 시는 한산하지만, 시인은 부지런하다. 움직이고 느끼고 예감하며 먼 곳을 향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특히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에서 시인은 막대기를 하나 들고 정원을 걸어 다닌다. 어린 사과나무의 가지에 눈이 너무 많이 쌓였을 때에 눈을 털어주기 위함이다. 눈이 퍼붓는 날, 이 세상의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한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한 뼘 다르게 다가온다. 유난할 것 없고 대단할 리 없는 소탈한 움직임을 누군가가 매일매일 이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에 등불이 켜지는 느낌이다.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시에서 하우게는 브레히트의 시를 두고 이렇게 적어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희곡작가이자 배우이자 시인이었으니/ 그런데 그의 시는 너무 쉬워서/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되었지.’ 하우게의 시 역시 우리에게는 ‘현관에 놓인 나막신’과도 같다. ‘바로 신으면’ 된다.
나막신과도 같은 시의 묘미는 압도되는 작품성에 있다기보다 시 너머에서 뒷짐 지고 있는 한 인간의 심성을 느끼는 묘미가 크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낸 어떤 저녁이면 하우게의 시집을 읽고 그를 만나 적요로운 우정을 나눈다. 그가 내 어깨에 얹힌 두꺼운 눈덩이를 털어주는 듯해진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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