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여름꽃 백합의 기다림
6월 말에 접어들면서 정원도 느낌이 확 달라졌다. 잎이 무성해지면서 꽃 자체의 빼어난 자태가 돋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여름의 꽃은 키가 크고 색상도 화려하고 진한 편이다. 무성한 잎을 뚫고 벌과 나비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다.
정원의 매력을 묻는다면 ‘변화’라고 대답하고 싶다. 달이 보름 단위로 차오르고 사그라들 듯 정원에도 보름 간격으로 드라마 같은 변화가 찾아온다. 노란 해를 닮은 루드베키아가 시들 무렵, 백합이 피어날 것이다. 지금 잔뜩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가 이미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6월 끝자락에서 7월 초의 어느 순간 백합이 꽃봉오리를 활짝 열면 우린 그제야 ‘아, 꽃이 피었네’ 알아차리겠지만 실은 이미 3월부터 백합의 기다림은 시작됐다. 함께 싹을 올린 튤립·수선화가 만개해 절정의 시간을 누릴 때도 백합은 묵묵히 꽃대를 굵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한 해 전에 비축한 에너지로 꽃망울을 터뜨리고, 백합처럼 여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에너지를 모아 최고의 자태를 드러낸다. 봄꽃이나 여름꽃이나 준비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절대 때가 와도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정원에 기적 같은 변화가 찾아오는 건 모두 이런 기다림 때문이다. 기다림이 길수록 꽃대도 굵어지고, 그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꽃도 커진다. 누가 번호표를 주고 순서를 매겨준 것은 아니지만 식물들은 자신이 꽃 피울 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그 기다림을 성실하게 견딘다. 뜨거운 여름 활짝 핀 백합을 보았다면, 그 꽃을 피우기 위한 6개월의 기다림과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덤으로 원예 팁 하나. 백합처럼 꽃대가 높게 올라오는 식물은 지지대를 세워주는 게 좋다. 휘청거림이 심해지면 꽃을 피우는 데보다 줄기를 튼튼하게 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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