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와에 담긴 가장 사적인 여행 이야기

양윤경 2023. 6.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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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함께 세계를 누비며 긁히고 닳고 찌그러지는 물리적 상흔으로 수많은 여행을 아카이빙해 온 리모와가 125년간 쌓아온 영광의 상처를 기념하는 전시를 도쿄에서 열었다.
악어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강력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상징하는 리모와의 2012년 캠페인.

여행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과 이를 준비하는 시간을 포괄한다. 어쩌면 여행 그 자체보다 과정이 더 설렌다. 1898년 파울 모르스첵은 독일 쾰른에 여행자들의 가슴 뛰는 순간을 함께할 여행용 트렁크 전문 회사를 설립했다. 세계 최초의 알루미늄 트렁크부터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가방까지 트렁크에 집중한 125년 역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리모와의 125년 역사를 일견할 수 있는 전시 〈SEIT 1898〉가 도쿄에서 6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일본은 리모와가 독일 밖으로 처음 진출한 곳 중 하나라 역사적 유대가 깊습니다. 리모와가 지향하는 퀄리티와 내구성, 디테일을 향한 집념, 디자인,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은 일본과 교집합을 이루죠.” 리모와의 CEO 위그 보네-마장베르의 말이다. 실험적인 컬래버레이션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 소장 케이스, 아이코닉한 브랜드들과의 협업, 특별한 목적을 지닌 다양한 피스까지 여행 가방 하나하나가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같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알루미늄 러기지를 구성하는 220개의 부품.

전시는 ‘역사’ ‘알루미늄’ ‘폴리머’ ‘특수 목적’ ‘컬래버레이션’ ‘프렌즈 & 패밀리’로 구성됐다. ‘역사’ 섹션에서는 지금의 리모와를 있게 한 혁신 기술과 첨단 소재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가죽과 나무로 여행용 가방을 만들던 회사가 어느 날 공장에 화재가 나 모든 재료가 불타고 알루미늄 금속 부품만 남은 걸 보고 세계 최초로 경금속 캐리어를 선보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지금의 리모와를 있게 한 이 드라마는 ‘알루미늄’ 섹션에서 더욱 깊이 있게 이어진다. 독일의 엔지니어링은 종종 예술로 비유된다. 하나의 알루미늄 캐리어가 완성되기까지 117분 동안 220개의 부품을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표현한 작품은 독일 엔지니어링의 정수를 체감할 수 있게 한다. ‘폴리머’ 섹션에서는 알루미늄과 함께 리모와의 또 다른 축을 맡고 있는 첨단 소재를 소개한다. 자유로운 조색과 사출 성형, 내열성 등으로 캐리어에 특화된 장점을 두루 갖춘 ABS와 우주비행사의 헬멧 소재로 쓰인 특수 폴리머 폴리카보네이트가 바로 그것. 더 나은 소재를 찾기 위한 리모와의 끝없는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수 목적’ 섹션에서는 ‘기능에 따라 형태를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에 대한 리모와의 솔루션을 만날 수 있다. 체스 플레이어와 음악가, 모형 비행기 제작자부터 시계 수집가, 고급 자동차 애호가까지 세상에는 서로 다른 니즈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리모와는 이들의 요구를 섬세하고 우아하게 해결했다. 맞춤 제작한 여행 가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타투이스트 닥터 우의 러기지.
중국 아티스트 유에민쥔과 컬래버레이션한 스페셜 에디션 케이스.
무라카미 다카시의 러기지.

‘컬래버레이션’ 섹션에서는 슈프림, 디올, 팔레스, 펜디, 몽클레르 등 수많은 하이엔드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을 전시했다. 특히 전 세계 911점 한정으로 출시된 리모와 X 포르쉐 핸드 캐리 케이스 페피타는 포르쉐 911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담아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더불어 수많은 아티스트가 리모와를 캔버스로 활용해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이 섹션의 묘미. 한국 전통 가구인 머릿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김현희 작가의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전시 마지막은 리모와가 친구이자 가족이라 칭한 이들의 개인 소장 러기지들을 한데 모아 장식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등장했던 파격적 디자인의 러기지부터 빌리 아이리시, 로저 페더러와 페기 구, 패티 스미스가 실제로 들고 다니는 러기지까지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여행 가방들이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양한 악기를 위해 제작된 리모와 케이스.

여행 가방은 여행자들의 여정에 늘 함께한다.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영광의 자국이 생기고, 찌그러진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한 스티커들이 겹치고 또 겹쳐지며 각자의 여행이 아카이빙된다. “여행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된다는 명제는 리모와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행에 늘 동행하는 여행 가방, 여기에 쌓여가는 모든 흔적과 자국, 스티커들은 여행의 진정한 파트너입니다. 이것이 리모와의 아이덴티티죠.” 리모와의 SVP 에밀리 드 비티스의 코멘트다. 125년 동안 여행자들의 여행에 동행한 수많은 여행 가방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아쉽게 도쿄 전시를 놓쳤다면 9월 뉴욕, 2024년 쾰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섭섭해 마시길. 아직 리모와는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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