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은 회사 밖에서"? 오늘도 노동하는 우리에게

김도하 2023. 6. 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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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노동] 일과 보람... 노동자들에게 와닿는 소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김도하]

"노무사님이 병아리 노무사는 아니시지만, 그래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함께 월간지를 만드는 선전위원 한 분께서, 내가 병아리 노무사가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강조하시며 서평 집필을 권해주셨다. 사려 깊은 배려가 민망하게도 나는 여전히 내가 의심할 여지없는 사회초년생 '병아리 노무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소설의 제목에 흥미가 들었기에, 흔쾌히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 했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출판사 작가정신, 2020)>는 이제 갓 노무사가 된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다. 작품이 처음 나온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며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은 그저 노동 문제만을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주인공이 다양한 노동 문제를 부딪치고 해결하며 어엿한 한 명의 노무사로 자라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사가 아니더라도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쳤다면, 직장생활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2020. 작가정신.
ⓒ 작가정신
 
불의에 맞서 성장하는 '병아리 노무사' 히나코

주인공 아사쿠라 히나코는 작은 노무법인 '야마다 노무사사무소'에서 일한다. 히나코는 일본어로 병아리(ひよこ, 히요코)와 발음이 비슷해 이름 대신 '병아리 씨'라는 별명으로 종종 불린다. 하지만 이름만 병아리와 비슷한 것은 아니다. 전화를 받는 것조차 서툴고, 고객사의 직원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그야말로 아직 한참 성장할 길이 남은 '병아리 노무사'이다.

작중에서 히나코는 기업의 입장에서 회사의 노무 리스크를 줄이는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그러나 히나코 본인이 한 때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을'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는 탓일까? 기업 입장에서 해야하는 자문 업무는 그녀에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도리어 자문을 맡은 회사가 연장근로시간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재량근로시간제의 적용이 적절하지 않다며 나서서 시정을 권고하다가 회사로부터 자문이 끊기기도 한다.

'카나리아는 운다'라는 에피소드에서 히나코는 한 IT 회사의 노동 컨설팅을 맡는다. 그런데 대표가 히나코에게 임신한 여성 노동자 '도마'를 해고할 방법을 문의한다. 그는 곧 출산휴가에 들어가게 되는데,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이다. 대표의 문제적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히나코는 도마가 회사 내에서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엄마 직원'인 도마를 통해, 앞으로 회사가 여성 노동자의 출산에 어떤 식으로 나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범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히나코는 어떻게 할까. 히나코는 고민 끝에 다른 직원들의 이직 방지를 위해, 회사의 노동 규정을 전반적으로 정비할 것을 대표에게 제안한다. 다행히도 대표는 히나코의 제안이 일리가 있다면서 여성 친화적인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도마는 자신 같은 '엄마 직원'에게 좋은 회사로 이직하기로 마음먹는다. 히나코 역시 자신에게 도마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정말로 회사가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한 명의 노동자로서 현실을 사는 이들
ⓒ pixabay
 
히나코의 고민은 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 명의 노동자로서 매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똑같을 것이다.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나에게 회사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고통 받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늘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으며 회사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꾸는 삶을 갈망한다.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 '잡고 싶은 손은'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약간의 실마리를 준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히나코는 한 의류 회사로부터 새로운 노동 자문 업무를 수행한다. 히나코가 얼핏 보기에 이 회사는 앞서 언급한 회사처럼 대놓고 문제적인 요구를 부탁하는 회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장 역시도 "사원이 우리 회사를 선택 해주었다는 것에 나름의 매력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히나코에게 말한다. 심지어는 이 회사의 사장은 인턴들의 이름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부서 간 갈등과 파업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놓여있다. 거기다가 조만간 다른 회사에 인수, 합병이 될 것이라는 소식까지 들려와 더욱 사내 여론이 뒤숭숭하다. 히나타는 사장에게 사원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사장이 먼저 나서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감명을 받은 사장은 직원들 앞에서 인수 합병에 대한 소문에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떤 길을 향해 나갈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사원들은 사장의 진솔한 이야기에 자신들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사장과 사원이 함께 회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같이 극복하기로 다짐하면서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노동자로서 일의 보람을 느낀다는 것은

이 에피소드에서 사장은 히나코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렵게 노무사가 되었는데, 이제 다음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히나코는 이렇게 답을 한다. 자신에게 있어 앞으로 삶의 목표는 '보람'이라고.

필자는 이직이 잦았다. 회사가 나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회사를 평가하고 일의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며, 회사가 나의 우선순위에 밀린다며 퇴사하곤 했다. 그렇게 잦은 이직에 선배들은 이렇게 충고하곤 했다. "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건 포기했다." "보람은 일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병아리라서일까. 나는 아직도 일의 보람을 찾는다. "회사는 소속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라는 명판결문을 굳이 꺼내어 보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에서, 내가 속한 곳에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일의 보람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일에서 보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소설 속 히나코는 어느 정도 '보람'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답을 들려주는 듯하다. 책 속 그의 말이다.

"하지만 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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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이자 노무사인 김도하 님이 썼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6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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