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코치로 돌아온 이상민, 이번엔 해피엔딩?

이준목 2023. 6. 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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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16년 만의 친정팀 귀환... KCC 팬덤 통합-확장시키는 데 기여할듯

[이준목 기자]

지난 26일 농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 전 서울 삼성 감독이 전주 KCC 코치로 전격 합류한 것. KCC 구단은 이상민과 2024-25시즌까지 2년간 코치 계약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KCC의 전설'이었던 이상민 코치로서는 16년 만의 친정팀 귀환이다.

이상민과 KCC의 오랜 인연은 '애증'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이상민은 홍대부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5년 KCC의 전신인 실업 현대전자에 입단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현대는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위하여 이상민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입대시키며 미래를 기약했다.

이상민이 상무에 있던 기간인 1997년 프로농구(KBL)가 출범했고, 2년차이던 1997-98시즌부터 이상민은 대전 현대에 복귀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한다. 당시 현대는 이상민을 비롯하여 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로 이어지는 막강한 전력을 완성하며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의 팀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현대는 2001년 전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KCC 이지스로 팀명을 바꾸며 장기간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왕조'로 자리매김했다. KCC는 이상민이 활약했던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정규리그-챔프전 우승 각 3회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상민은 정규리그 MVP 2회, 챔프전 MVP 1회 등 화려한 개인 수상경력을 보유했고, KBL 20주년을 기념한 '레전드 12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경쟁자가 없을만큼 독보적인 인기와 팬덤을 바탕으로 프로농구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로 장기간 군림했다. .

이상민은 KCC라는 팀에 누구보다 애정이 깊었고, 많은 이들도 이상민이 KCC의 원클럽맨으로 남아 은퇴 후에는 미래의 감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2007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며 이상민과 KCC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파국을 맞이했다.

2007년 6월, 전 시즌 최하위에 그쳤던 KCC는 전력보강을 위하여 FA(자유계약선수)로 서장훈과 임재현을 잇달아 영입했다. 서장훈은 당시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중 한 명이었고 이상민과는 연세대 동문으로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였다. 서장훈이 KCC행을 선택하는 데는, '이상민과 뛰고 싶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농구계에서도 연세대 시절 이후 12년만에 다시 만난 두 슈퍼스타의 재회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당시 FA 규정상, 서장훈의 전 소속팀인 삼성은 KCC에게 보상금 혹은 보상선수를 지명할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삼성은 돈이 아닌 보상선수를 선택했고, KCC가 보호할수 있는 선수는 최대 3명이었다. 다만 FA 이적 선수도 보호선수 대상에 포함되다보니, 서장훈과 임재현을 제외하면 KCC가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선수는 단 1명뿐이었다. 당시 KCC에서는 이상민과 함께 추승균이라는 또다른 프랜차이즈스타가 있었다.

고심 끝에 KCC의 선택은, 추승균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전격 지명했다. 당시만 해도 슈퍼스타급 선수의 이동이 많지 않았던 KBL에서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농구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이상민의 팬들은 KCC가 팀의 레전드를 '토사구팽'했다며 격분했다. 본의 아니게 '1대 1 트레이드'가 되어버린 모양새에 당사자인 이상민과 서장훈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충격이 컸던 이상민은 며칠 후 삼성 입단 기자회견에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KCC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토로하며 감정이 북받친듯 끝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대부분의 농구계 관계자들은 이 사건이 우연과 제도적 한계가 겹쳐져서 벌어진 불운한 해프닝일뿐이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시 KCC는 추승균과 이상민, 두 스타를 모두 보호할 수는 없던 상황에서 좀더 젊고 기량도 건재했던 추승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성이 'KCC맨' 이미지가 강한 이상민을 굳이 선택하겠냐는 방심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나이들었어도 여전히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성을 가진 이상민을 영입할 기회를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훗날 이 사건은 FA 보상규정과 보호선수 제도가 확장 변경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7년 이적 파동'은 결과적으로 이후 두 팀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서장훈을 떠나보낸 삼성은 이후 이상민을 중심으로 한 '가드 왕국'으로 팀컬러를 바꾸며 인기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KCC에서도 '이상민 시대'와 구분되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전성기인 '허재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사건이었다.

'동지에서 적'이 된 이상민과 KCC의 악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적파동 이후 첫 해인 2007-08시즌 삼성과 KCC는 4강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던 KCC의 우위가 예상되었으나, 이상민의 맹활약을 앞세운 삼성이 놀랍게도 3연승으로 스윕 겸 업셋을 달성하며 '이상민의 복수 시리즈'가 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두 팀은 이듬해 2008-09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다시 맞붙었고, 이때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KCC가 승리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허재 감독이 이끈 KCC는 이상민에 이어 서장훈마저 이적시킨 이후, 하승진-전태풍-강병현 등을 중심으로 리빌딩에 성공했고,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우승을 거머쥐며 비로소 이상민 시대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이상민은 삼성에서는 선수로서는 준우승만 2차례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은퇴 이후 코치에서 감독까지 역임하며 어엿한 '삼성맨'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다. 지도자로 보낸 시절까지 합치면 이제는 KCC보다 삼성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결과적으로는 2007년 이적파동 이후 행보는 이상민과 KCC 양쪽 모두 윈-윈으로 끝난 셈이다. 또한 KCC는 레전드로서 이상민의 공로를 인정하며 은퇴 후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상민은 당시 영구결번식에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상민은 2014년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2022년까지 '삼성 구단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2016-17시즌에 최고성적인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8시즌 중 무려 6번이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꼴찌만 3번이나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경신한 끝에 지난해 1월 불명예 사임했다. 삼성은 이상민의 사임 이후로도 여전히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감독직 사퇴 이후 한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던 이상민은 약 1년반 만에 KCC 코치로 현장에 깜짝 귀환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좋지않은 모양새로 떠났던 친정팀으로 16년 만에 돌아온 것도 놀랍지만, '감독급 인사'가 코치로 백의종군한 것도 대단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조동현(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 KT 감독직 사임 이후 현대모비스 코치로, 유도훈(전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이 안양 KT&G(현 KGC)에서 물러나고 인천 전자랜드(현 가스공사) 코치로 부임한 사례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은 40대 초중반으로 지도자 경력이 아직 그리 길지 않아서 코치 복귀에도 큰 위화감이 없었다. 반면 이상민은 삼성에게 8년 넘게 지휘봉을 잡았던 베테랑 감독이자, 지금 현장에는 은희석(삼성), 조상현(LG), 전희철(SK) 등 그보다 젊은 후배 감독들도 수두룩하다.

KCC는 현재 이상민-허재 시대 이후 또 하나의 '슈퍼팀'을 결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프로농구 최고의 인기 스타 중 한 명인 허웅, 개성넘치는 악동이자 MVP 출신인 최준용, 국가대표 라건아와 이승현 등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삼성에서 성적과 별개로 자율농구와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인망을 얻었던 이상민 코치는, 현역 최고령인 전창진 감독을 보좌하며 개성넘치는 선수들과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상민 코치를 '포스트 전창진' 시대를 대비한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은퇴 이후로도 변함없는 인기와 화제성을 자랑해 온 이상민 코치의 복귀는, 2007년 이적파동 이후 '이상민 시대와 그 이후'로 한동안 분리되었던 KCC의 팬덤을 다시 하나로 통합-확장시키는 데도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상민 코치는 26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KCC는 고향 같은 곳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라며 친정팀 복귀에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파란만장한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난 이상민과 KCC의 '두번째 연애'는 이번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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