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외면한 유해 발굴 조사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
[서부원 기자]
개인적으로, 국립 5.18 민주 묘지에 갈 때마다 맨 먼저 찾아가는 데가 있다. 묘역의 가장 외딴 구석에 자리한 10구역. 국립 5.18 민주 묘지는 상하좌우 10개의 구역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현재 778분의 희생자들이 영면해 있다. 10구역은 묘역 한가운데 우뚝 선 5.18 민중항쟁탑을 지나 오른쪽 길 끝에 조성되어 있다.
▲ 국립 5.18 민주 묘지의 10구역 모습. 봉분이 없고, 묘비의 이름 아래 '묘' 대신 '령'이라고 적혀있다. 그 너머로 봉분이 있는 묘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
ⓒ 서부원 |
해마다 오월이면 묘역은 유족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로 북적이지만, 10구역만큼은 황량하리만큼 썰렁하다. 5.18 당일에도 그 흔한 국화꽃 한 송이 올려져 있는 묘비가 드물다. 그들의 유족이 왜 없을까마는 반세기 가까운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이승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걸 방증한다.
행불자는 '사망자'가 아니라 여전히 '실종자'로 기록돼 있다. 수십 년이 지났을지언정 서류상 사망하지 않은 것이다. 유해도 없이 어떻게 제사를 지낼 수 있겠느냐고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딘가에 묻혀있을 부모와 형제를 찾아 오늘도 암매장 추정지 주변을 서성이며 유해 발굴 조사를 서둘러달라고 탄원하는 유족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다.
10구역부터 묘역 참배를 시작하는 건, 그들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살아 돌아오리라는 바람은 진작 내려놓았지만, 유해라도 찾아 이곳에 모실 수 있도록 간절히 소망한다. 부디 5.18 당시 주검들을 군용 헬기에 실어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일부의 당혹스러운 증언이 사실이 아니길 기도한다.
5.18 행불자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
5.18 행불자에 관한 통계는 관련 단체마다 들쭉날쭉하다. 신고가 접수된 행불자는 총 242명이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행불자는 총 76명(2022년 9월 현재)에 불과하다. 올해 말까지 활동하게 되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의 협조를 얻어 유해 발굴 및 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어 행불자 수에 약간의 변동이 예상된다.
5.18 행불자 문제에 천착하는 건, 그것이 유족들의 피맺힌 한을 위무하는 일이자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유해의 발굴 조사 없이 학살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유해와 그들이 지닌 유품을 통해 당시의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뿐더러 가해자로서 인간이 어디까지 야만적일 수 있는지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역사 교사로서, 5.18을 수업 시간에는 공식 명칭대로 '민주화운동'이라 이름 붙이지만, 답사를 인솔하거나 외부 강의에 나설 땐 '광주 학살'이라고 규정한다. 5.18은 국가가 전시도 아닌 평시에 수백 명의 민간인을 총칼로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한 사건이다. 이를 두루뭉수리 '민주화운동'이라 부르는 건 진실을 감추려는 속셈처럼 여겨서다.
그러나 민주 국가의 당연한 의무인 유해 발굴 조사조차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제한된 데다 관련 자료조차 폐기돼 없거나 제출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리라는 기대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가해자인 국가가 방관하는 가운데 일부 극우세력이 유족을 욕보이고 윽박지르는 현실에서 '학살'이라는 명명은 차라리 저항이다.
그런데, 이런 부박한 현실조차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제주 4.3 사건과 6.25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수십만 민간인들의 유족들은 '빨갱이'로 내몰리며 무려 70여 년을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시신의 수습은커녕 참혹했던 당시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다. 그나마 희미한 기억이라도 증언할 유족들조차 이젠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집단 학살의 책임자도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해자도 그들의 자손을 연좌제로 엮어 책임을 지우는 건 가혹하고도 부당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모두 떠나고 없어야 비로소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언론을 탄다.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가 국가인 우리 현대사의 태생적 한계다.
국회에서 천신만고 끝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도 정부와 여당의 훼방은 계속된다. 급기야 역사 인식 논란으로 물의를 빗은 인물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잇따른 망언은 진실화해 위원회의 존재 이유마저 되묻게 만든다.
진실화해 위원회는 항일 독립운동 및 일제 강점기 이후 국력을 신장시킨 해외 동포의 활동을 연구하고, 광복 이후 반민주적 인권 유린과 폭력, 학살 사건 등을 조사하여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설립된 독립 기구다. 진실이 밝혀져야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감춰진 사료를 찾아내고 유해 발굴 조사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10년 말, 임기 종료로 1기 진실화해 위원회의 활동이 마무리된 뒤 유해 발굴 조사도 멈춰 섰다. 당시 전국적으로 160여 곳의 집단 학살 후 매장된 지역을 확인한 것은 나름의 성과였다. 이후 한국전쟁 전후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보수 정권은 물론, 진보 성향의 정권에서도 유해 발굴 조사에 관한 한 뜨뜻미지근한 입장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 206:사라지지 않는 > 스틸 이미지. |
ⓒ 찬란 |
결국 법과 제도를 핑계로 국가가 방치한 과제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떠안았다. 2014년, 전국에서 생면부지의 대학생과 대학원생, 평범한 직장인, 시민단체 활동가, 전문가들이 모여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을 꾸렸다. 이후 지금까지 예산 부족과 토지 사용 동의 절차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우공이산'의 다짐으로 유해 발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헌신적 활동을 지켜보노라면, 한편으론 씁쓸하고 다른 한편으론 사뭇 뭉클하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 땅의 장삼이사가 대신 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양가감정이다. 정권이 유해 발굴 조사를 외면하고 방해할수록 국가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임을 국민 앞에 자백하는 꼴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국방부 산하에 '유해 발굴 감식단'을 설치하여, 한국전쟁 당시 순직한 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찾아내기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현실과 대조된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일념으로 활동 기한마저 없앴다. 그들의 명예를 고양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개개인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이라고 명토 박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이제 당위를 벗어나 우리는 '무엇'을 통해 기억할 것인가를 자문해야 한다. 유해 없이 영혼만 모셔진 5.18 행불자의 묘비 앞에서 무거운 숙제 하나를 받아안았다. 묘비의 이름 뒤에 '령' 대신 '묘' 글자가 새겨지지 않고서는 온전한 5.18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 다큐멘터리 영화 < 206:사라지지 않는 > 스틸 이미지. |
ⓒ 찬란 |
끝으로, 반갑고 고마운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2014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꾸려진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의 활동을 담담한 영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 206 : 사라지지 않는 >. 숫자 '206'은 인체를 구성하는 뼈의 개수이고, '사라지지 않는'은 유해 발굴을 통해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를 담은, 짧지만 강렬한 제목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주연 배우가 있을 리 없지만, 개인적으로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를 손꼽고 싶다. 땡볕 아래에서 발굴 조사를 함께하며 제자뻘인 단원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그가, 유해 봉안식에서 끝내 가족의 유해를 찾지 못해 죄송하다며 유족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여든을 앞둔 노교수의 헌신에 이제 우리가 보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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