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 VS 갱년기 엄마

전정희 2023. 6. 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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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4)
깊은 밤 시골 마을 뒤흔든 '가출 소녀' 소동 ...집 나가면 개고생
에세이스트 전성옥. '그룹홈'의 아홉 자녀 엄마이기도 하다.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그룹홈 고양이. 요 녀석들도 가출한다. "집 나가면 개(?) 고생이야!" 사진=전성옥 제공

사춘기 소녀의 큰 질병은 가출이다

사춘기 소녀의 가장 큰 질병은 가출이지 싶다.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 한다는 질풍노도 전염성 바이러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놈의 병은 치료제도 없다. 사춘기 자녀를 둔 한국의 모든 가정을 초토화시키는 무서운 질환. 우리 집에도 스멀스멀 찾아왔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데 짐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아이. 엄마도 처음 겪는 일이라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한밤중에 나가겠다고 하니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은 너나나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티를 내면 지는 거다.

“그래? 집을 나가겠다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할거다. 너! 집이 싫다고 나가면 붙잡지 않을거야.”

고집을 부리며 이겨보겠다고 덤비는 녀석을 상대하는 갱년기 엄마도 만만치는 않다. 어디까지가 정점인지 가늠할 수 없다. 오직 사춘기 소녀 VS 갱년기 엄마의 싸움만 있을 뿐이다.

“어디한번 해봐요. 내가 못 나가갈 것 같아요?”

한밤중에 책가방에 책들을 내팽개치고 옷가지를 싸는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는 속으로 얼마나 무서운지 손발이 덜덜 떨린다. 보다 못한 남편은 아이를 말리고 엄마를 말리고 한숨에 쩔쩔매고 있다.

“도대체 저 가시나는 왜 저렇게 고집이 센거야? 당신이나 00이나 둘 다 똑같아. 내가 보기엔.”

남편과 투닥거리는 사이 아이는 없어져 버렸다. 정말로 이 오밤중에 집을 뛰쳐나간 것이다.

“오메 오메!!! 이것이 진짜로 나가버렸네.”
이 깊은 밤. 소녀가 가출했다. 동네 주민이 수색에 나섰다. 사진=전성옥 제공

당황한 엄마는 이웃까지 동원해 아이를 찾기 시작. 이제 막 수요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옆집이며 동생 언니 오빠까지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 졌다.

도로를 따라 차를 움직이며 천천히 찾아보았지만 오간데 없다. 멀리 갈 시간은 아닌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00야”소리까지 질러가며 시골 밤을 흔들어 댔지만 찾지 못한 채 돌아왔다.

아이가 가출한 사건이 처음인 엄마는 땀이 뻘뻘 나고 불안함에 잠시도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신고해야 할까? 이 밤중에 길도 잘 모르는데 어떡해?”

신고를 해야겠다고 전화기를 찾는 순간 건물 안쪽 구석에서 가방을 맨 채 멋쩍게 나타나는 사춘기 소녀. 누가 이긴 걸까? 이 싸움은.

그 후로도 짐을 싸고 풀고를 몇 번 하던 반항아 소녀는 엄마의 갱년기기에 항복(?)하고 제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몇 번 가출행각을 해대더니 급기야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아있는 고양이 주머니(아빠가 추운 겨울 길바닥에 버려진 고양이를 주머니에 넣어와 살려 이름이 주머니가 되었다)를 보며 아이들은 말한다.
두 마리 고양이 중 한 녀석은 가출에 성공(?)해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 고양이 '주먼이'. 사진=전성옥 제공

“주먼아? 너는 바구니(집나간 고양이 이름이다. 돌림자를 써서 바구니로 지었다)처럼 집 나가면 안돼!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가출의 추억을 갖고 있는 소녀는 집 나간 고양이 바구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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