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93% 日 80% 韓 24%…의원 체포 가결 보니, '방탄' 맞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1603년 영국 의회에서 ‘의회 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이란 이름으로 처음 법제화했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내세운 제임스 1세의 잇딴 의원 체포에 맞서, 의회가 스스로 의회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영국의 이런 전통을 1789년 미국이 제정 헌법에 그대로 수용했다. 이후 영미권에 영향을 받은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확립 과정에서 의원 불체포특권을 헌법적 기본 권리로 받아들였다. 절대 왕정은 사라져 갔지만, 불체포특권은 집행권을 가진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로 정착됐다.
한국은 1948년 제헌 헌법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명시했다. 이후 유신헌법을 포함한 아홉 차례 헌법이 개정되는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제헌 때의 조문인 ‘국회의원은 현행범을 제한 외에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며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되었을 때에는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49조)는 현행 헌법(44조 1항, 2항)과 거의 유사하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의원 불체포특권의 존재 의의가 퇴색된 건 정치인의 오·남용 탓이다. ‘방탄 국회’라는 말이 정치권에 처음 쓰인 건 25년 전이다. 1998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 혐의로 검찰이 이신행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회기 중’을 유지할 목적으로 임시국회를 연이어 열었다.
당시 “방탄국회로 정치불신이 최악에 이르고 있다”(1999년,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자기반성도 일부 나왔지만,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 행태는 이후에도 지속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때만 되면 ‘무기명 투표’를 활용해 여야는 서로 보호막을 쳐주었다.
제헌 이래 현재까지 제출된 의원 체포동의안은 총 70건으로, 이 중 가결된 것은 17건(24.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결(20건)되거나 임기 만료 폐기 또는 철회(33건)됐다. 특히 15대·16대 국회(1996년~2004년)에선 각각 12건·15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는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외국은 어떨까. 일본에서는 1947년 헌법 시행 이래 현재까지 ‘체포허락 청구’ 사례 20건 중 16건(80%)이 가결됐다. 나머지 4건 중 2건은 부결됐고 2건은 철회됐다. 그나마 부결된 2건도 반세기 전인 1954년과 1958년에 있었던 일이고 철회된 2건 역시 표결 전 의원이 사퇴(1948년)하거나 자살(1998년)해서 발생한 일이다.
국회 회기가 아닌 기간까지 불체포특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독일조차 한국보다 가결률이 높다. 지난해 독일 연방 의회가 낸 자료에 따르면 독일 연방 의회에선 12대 국회(1990년)부터 19대 국회(2021년)까지 총 127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는데, 이 중 118건(92.9%)이 가결됐다.
한국공법학회장인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사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입법부를 보호하는 취지의 제도인데, 유독 한국에선 의미가 퇴색됐다”며 “국회가 책임감이 있다면 보여주기식으로 특권 포기나 폐지를 외치기보단 어떻게 해야 일본·독일처럼 제도의 취지를 살리며 운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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