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빚내서 돌려주라’, 문제 많은 역전세 해법

송세영 2023. 6. 2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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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보증금 반환 어려운 임대인에
정부, DSR 규제 완화 검토

무책임하게 보증금 탕진한
임대인과 무리하게 빚낸
갭투자자가 수혜

도덕적 해이 부추기고
가계부채 리스크 키울 우려

정부가 전세금 반환용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셋값이 직전 계약보다 하락한 역전세 문제 해결을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완화하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전세금 반환 목적에 한해 DSR 규제를 조금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늦어도 7월 중엔 시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전세금 반환보증 관련 대출에 선의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가계부채 부실화를 막는 보루 역할을 해온 DSR 완화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추 부총리가 굳이 ‘선의의 어려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부터가 반대 여론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레토릭이라는 의심이 든다.

역전세는 올해 하반기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하반기에 최고점에 계약한 전세들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에선 올해 들어 전셋값이 11.5%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셋값이 지난 3월 수준을 유지하면 집주인이 올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 차액은 24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역전세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이들 전부가 아니라 보증금 하락분 차액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경우다. 6억원이었던 보증금을 2년 전 8억원으로 올린 임대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차액 2억원을 2년 뒤 돌려줘야 할 채무로 간주하고 안정적인 곳에 맡겨뒀다면 계약 만료 시점에 전셋값이 6억원으로 하락해도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이 없다. 이와 달리 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차액 2억원을 다른 용도로 써버린 경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선의의 어려움이라고 할 구석은 없다. 일종의 채무인 전세보증금을 가외 소득인 것처럼 써버린 건 무책임한 행태일 뿐이다.

시세 차익을 노렸든, 향후 실거주 목적이었든 갭투자도 모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2년 전에 전세보증금 8억원을 안고 10억원에 집을 샀더라도 실투자금 2억원이 자기 돈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득이 없거나 아주 낮은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추가 대출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다. 문제는 2억원 대부분이 부채여서 추가 대출이 어려운 ‘영끌’ 갭투자자들이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수혜를 입는 대상은 결국 빚도 많은데 보증금 인상분까지 탕진해버린 임대인과 소득 수준에 비해 많은 빚을 내서 무리하게 갭투자를 한 경우다. 이들처럼 소득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진 이들이 빚을 더 내게 하는 것은 구제가 아니라 파멸로 모는 정책이다. 사회적으로도 가계부실 위험을 높임으로써 금융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도덕적으로도 문제다. 임차인의 보증금을 신중하고 성실하게 관리한 이들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수혜를 입는 셈이니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임차인은 한도 이상의 빚을 낸 임대인 때문에 역전세가 아니라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역전세로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대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자산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과도한 빚을 진 것으로 드러나면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를 청산하도록 돕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다고 하지만 시세보다 저렴한 급매물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적절한 가격만 제시하면 매각은 어렵지 않다.

정부는 올해 초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하면서 이미 DSR 적용에 예외를 뒀다. 박근혜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시즌2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에 40조원 이상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30조원 이상이 소진됐다. 주택 거래량이 늘고 가격 급락을 막는 효과는 있었지만, 가계부채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번에 또 예외를 적용한다면 정부가 가계부채 안정보다 부동산 경기 부양에 더 힘을 싣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선의의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보다 ‘선의의 피해를 입는 임차인’에 둬야 한다. 임차인에게 심각한 피해는 역전세보다 깡통전세에서 주로 발생한다. 역전세가 깡통전세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가계부채 리스크를 키우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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