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이재명발 추경불호

서경호 2023. 6. 2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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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자신을 ‘추경불호(追更不好)’라고 불러달라며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선을 긋고 있다. 2015년부터 매년 연례행사처럼 편성해 온 추경을 올해는 건너뛸 수 있을까. 처음엔 그리 쉽지 않다고 봤다. 예산을 잘 아는 전직 관료들의 시각도 비슷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동안의 학습효과. 추경을 안 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정치권 요구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추경을 했던 경제부총리가 과거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추경을 안 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현재로선’이라는 수식어를 달곤 했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변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추 부총리의 추경 워딩에도 ‘현재로선’이라는 말이 가끔 나왔다.

「 야당의 무리한 ‘35조 추경’ 요구에
저성장 및 역대급 세수 펑크에도
정부, 추경 없이 최대한 버틸 태세

올해 성장률이 1%대 중반의 저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한몫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1.5%)보다 낮은 1.4%로 낮췄다. 다음 달 초 발표되는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기존 전망치(1.6%)를 0.1~0.2%포인트 낮출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와 여당이 이런 저조한 경제 성적표를 견딜 수 있을까. 추 부총리가 추경을 안 한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음에도 증권가에서 추경 편성에 베팅했던 이유다.

현 정부는 건전재정을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보다야 나을 것이다. 재정 쓰는 데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는 매년 추경을 했다. 그렇게 나랏빚 400조원을 늘렸다. 지난 정부의 습관성 추경에 비할 게 아니지만 현 정부도 출범 직후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62조원의 추경을 했다. 더 아낄 수는 없었을까.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기획재정부 고위층은 “이미 대선 선거판에서 결정이 나서 인수위원회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보수 정부도 선거 바람에 휩쓸리면 별 수 없다. 누가 덜 쓰느냐, 더 쓰느냐의 상대적인 문제만 남는다.

사상 최대의 세수 펑크도 있다. 올해 1∼4월 국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조원 덜 걷혔다. 5월 이후 연말까지 세수 펑크 없이 지난해 수준으로 세금이 들어온다고 해도 올해 세입으로 잡은 400조5000억원보다 38조5000억원이 부족하다. 역대급이다.

지난 20년간 세수 부족 사태는 절반 정도인 아홉 차례 있었다. 그중 여섯 차례는 주로 국채를 더 발행하는 세입 경정 추경을 했다. 경기 침체가 심했던 해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을 수 있는 해법으로 예산 불용, 기금 여유자금 활용, 한국은행 잉여금 등이 거론된다. 예산 불용은 박근혜 정부 초반에 3년 연속 세수 결손이 터졌을 때도 활용됐다. 2013년과 2015년엔 추경을 했지만 2014년엔 하지 않았다. 2013년과 2014년엔 억지로 예산 사업을 줄였다는 강제불용 논란이 일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예산 불용액은 7조~8조원 정도지만 2013~2014년엔 18조원에 달했다. 올해 추경 없이 넘기려면 사상 최대의 예산 불용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재정을 아끼고 나랏빚 증가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황에 정부마저 지갑을 닫으면 재정의 경기 안정화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고, 국회가 심의한 예산 수십조원을 정부 뜻대로 요리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추경을 선택지에서 빼려는 정부 의지가 의외로 강하다. 가장 큰 이유는 35조원의 민생 추경을 주장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때문이라고 본다. 여의도에서 추경 논의의 판을 까는 순간, 35조원 추경을 놓고 야당과 협상해야 한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칫하면 감액 추경을 하려다 세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있는 재원을 최대한 아껴서 써보겠다는 게 정부의 스탠스다. 이해할 수 있다. 8년 만에 추경을 건너뛰게 된다면 이재명 대표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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