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건…

2023. 6. 2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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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산중에서도 장맛비를 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다. 물길에 가득 쌓인 낙엽을 치우고, 움푹 팬 도로도 정비했다. 무너질듯한 언덕엔 축대를 쌓아 돌리고, 질퍽한 마당에는 마사토를 깔고, 물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턱을 만들었다. 넉 달이나 하다 보니 도량 가꾸는 분들이 지칠 만도 하련만 오히려 서로를 위해 정성과 배려를 다한다. 그 선한 영향력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져간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왔을 인부들을 위해 삶은 햇감자를 참으로 내어오는 공양주의 마음이나, 사람들의 걸음 높이까지 계산하여 계단을 만드는 목수의 손길이 정겹다. 밤길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을 설치하는 처사의 마음이나, 텃밭에 상추며 고추며 가지를 가꾸는 노보살의 마음이 다 한 가지이다.

「 서로 서로 알아주는 ‘지음지교’
모두에게 평등했던 만암 스님
우리 시대에 부족한 ‘이심전심’
장맛비 소리도 부처님의 마음

김지윤 기자

『열자(列子)』 탕문편에 춘추전국시대 거문고 명인인 백아와 그의 음악을 잘 이해하는 친구 종자기의 지음지교(知音之交) 이야기가 나온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높은 산을 오르는 데 뜻을 두자 종자기가 “훌륭하도다. 높이 솟아오름이 마치 태산 같구나!”라고 말하고, 흐르는 물에 뜻을 두자 “훌륭하도다. 넘실넘실 장강이나 황하강 같구나!”라고 평한다. 백아는 그런 종자기에게 “참으로 훌륭하도다. 그대의 들음이여! 내 뜻을 알아냄이 마치 내 마음과도 같구나”라고 찬탄한다. 훗날 백아는 벗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세상에 자기 음악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음을 통곡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선(禪)은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는 것으로 심법(心法)을 표시했다. 중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 지점에 있는 영산, 즉 영취산은 부처님이 『법화경』 등 중요한 법문을 설했던 곳이다. 어느 날 설법을 하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꽃잎이 흩어져 내렸다.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는데, 대중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가섭존자만이 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깊은 뜻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했다.

나의 수행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서옹 노스님의 스승 만암 스님(1876~1956)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다가 스님의 말씀을 기록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려면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를 이루어야 하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닌 가운데 큰 자비의 마음이 나온다. 그때에 대상을 만나면 어두운 밤에 밝은 빛이 되고, 길 잃은 자에게 바른길을 제시하는 절대 평등, 절대 공기(公器)가 된다’는 말씀이다. 가까이 사는 사숙 스님을 만난 김에 불쑥 “만암 노사에 대한 일화 중에 기억하시는 말씀이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만암 스님은 해방 이후 조계종 초대 종정을 하셨던 어른인데, 어린 학인 스님들과 한방에서 생활했어요, 누군가 약재나 음식을 따로 만들어 오면 곧바로 공개하여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떠나신 뒤 방에는 한 물건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해요. 절대 평등하고 공적인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또 자주 하셨던 말씀이 ‘우선 중이 되라, 중이 되기 전 부처를 말하지 말라’였습니다.”

껍데기만의 스님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씀이다. 속 알맹이가 스님이 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스님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모든 순간 자비를 실천한 만암 스님은 조선 말엽에 태어나 식민지, 해방, 6·25전쟁을 거치는 시기에 조계종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불교계에도 해방 이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식민지 시대 왜색불교의 영향으로 비구승(독신)과 대처승(혼인)의 혼재하면서 빚어진 갈등이다. 만암 스님은 스님을 이판(理判) 수행승(독신)과 사판(事判) 교화승(대처)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대처승은 제자를 둘 수 없게 하는 개선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야말로 자비의 안목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오늘날에 이심전심의 현묘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정신적 방황을 돕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비심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칠 전, 김포에서 십여 명이 산중을 찾아왔다. 매월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오고자 하는데 모임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요청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으로 정해주고, 연유를 말해주었다.

“마음이 통하려면 소동파의 오도송인 ‘계곡에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산빛 그대로가 청정한 진리의 몸이구나, 밤새 쏟아낸 팔만사천 감로법문을 뒷날 어떤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무정설법을 마음에 새기세요. 장맛비가 계곡을 흐르다가 때론 폭포수가 되고, 강물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바다에 이릅니다. 그렇듯이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사람은 물론 두두물물(頭頭物物)의 설법도 들을 수 있습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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