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킬러문항에 공정수능 무너졌다

최민지, 이가람 2023. 6. 2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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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사교육 경감대책 발표


교육부가 26일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공정 수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공교육 과정에서 성실하게 학습한 학생들이 수능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교육부는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소위 ‘킬러 문항’은 핀셋으로 제거한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킬러 문항에 대해 교육정책 책임자로서 반성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공교육 과정 내 출제가 기본 원칙인데, 지나치게 전문가와 공급자인 출제당국 입장에서 학생과 학부모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부는 최근 3개년(2021~2023학년도) 수능과 최근 치른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등 4개 시험에서 22개 킬러 문항을 찾아 공개했다. 국어 7개, 수학 9개, 영어 6개 문항이다. 교육부가 밝힌 킬러 문항 기준은 문항의 정답률이나 교육과정 준수 여부보다 공교육에서 다룰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성취 기준을 3~4개 엮고 꼬아서 낸 문제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느냐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교육과정에 포함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요소가 포함된 경우도 킬러 문항으로 본다는 의미다. 과목별로 국어는 “고교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이 출제되거나 배경 지식이 있어야 빠르게 풀 수 있는 문항”을 킬러 문항으로 꼽았다. 수학은 “여러 수학적 개념이 결합되거나 대학교 과정의 선행학습을 해야 쉽게 풀 수 있는 문항”, 영어는 “지문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문장이 복잡한 문항”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수능의 적정 난이도 조정을 위해 출제 과정부터 현장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한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를 운영한다. 자문위는 시험 전 출제 전략 수립부터 시험 후 개선안 마련까지 관여하게 된다. 또 독립성이 보장되는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신설해 출제 단계에서부터 문항 내용을 점검한다. 내년에는 현장 교사 중심으로 출제진을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현재 수능 출제위원단은 대학 교수와 교사 비율이 각각 55%, 45% 정도다. 다음 달 6일까지 사교육 카르텔, 부조리 집중신고를 받고 있는 교육부는 한국인터넷광고재단과 함께 사교육 업체 부당 광고 모니터링도 병행한다.


전문가 “변별력 위한 새 문항 패턴에 수험생 혼란” 우려도

김경진 기자

국어의 경우 교육부가 제시한 7개 킬러 문항 중 6개가 비문학 지문이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는 ‘동일론, 기능주의, 설의 의식론과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과 ‘지각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 글을 지문으로 제시한 14번이 꼽혔다. 교육부는 “낯선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가 사용됐고, 선택지 문장 역시 추상적”이라고 설명했다. 2023학년도 수능 17번 문제는 클라이버 법칙을 통해 농게 집게발 길이를 추정하는 내용으로, 오답률이 84.9%(이하 EBS 채점 기준)로 추정된다. 2005학년도 이래로 수능 국어 오답률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른바 ‘용암수능’으로 불린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8번 ‘헤겔의 변증법’ 관련 문제, 13번 ‘미국 트리핀 딜레마’에 관한 문제 등이 킬러 문항으로 제시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어 교사는 “제한된 시간 내에 풀기 어려울 만큼 지문에 담긴 정보가 많거나 배경 지식 수준이 높으면 킬러 문항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도 “국어 지문이 정보를 너무 많이 압축해 속도 테스트가 돼버렸다”며 “지문은 교과서 수준으로 내면서 문항 난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학의 킬러 문항 9개는 모두 주관식이다. 오답률도 대부분 90%를 웃돈다. 올해 6월 모평에선 오답률 97.1%로 추정되는 22번이 킬러 문항으로 제시됐다. 교육부는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돼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수능 공통과목 마지막 문제인 22번도 ‘킬러’로 지목됐다. “선택과목 미적분을 응시한 수험생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풀이가 가능해 다른 학생보다 유리하다”는 이유다.

염동렬 충남고 수학 교사는 “한 문제에 너무 많은 개념이 결합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번에 교육부가 킬러로 지적한 한 문항은 풀이 과정이 A4 용지 한 장을 넘는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영어는 주로 빈칸 추론이나 간접 쓰기(문장이 들어갈 위치) 문항이 선정됐다. 지난해 수능 34번 빈칸 추론 문제는 오답률이 83.4%다. 교육부는 “시간 흐름의 이해라는 추상적 개념이 지문에서 다뤄져 내용 이해가 어렵고, 지문에서 구조가 복잡하고 긴 문장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수능 37번은 변호사 수임료에 대한 지문으로 “관련 어휘에 익숙지 않은 학생들에게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 지침대로 킬러 문항이 없어질 경우 ‘쉬운 수능’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변별력을 가르기 위한 새 문항 패턴에 수험생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나면 나머지 문항은 평소 하던 대로 준비하면 된다”며 “변별력을 줄 문항은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평가에서 확인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민지·이가람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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