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률 36.8% 문제까지... 이게 정말 킬러 문항 맞습니까

신정섭 2023. 6. 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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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가 본 교육부 킬러문항 발표... 대통령 발언 두둔하기 위한 부풀리기 의심되는 이유

[신정섭 기자]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 권우성
 
교육부가 26일 최근 3년치 수능과 모의평가를 분석해 킬러 문항으로 의심되는 목록을 공개했다. 그동안 언론에 오르내리던 '용의자'가 포함되긴 했지만 수학 9개, 국어 7개, 영어 6개, 과탐 4개 등 무려 26개씩이나 지목해, 누가 봐도 킬러 문항의 폐해를 부각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린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교육부 자료에는 국영수 22개 킬러문항이 포함됐고, 브리핑 과정에서 과탐 과목 4개가 추가됐다.) 

무엇보다도, 킬러 문항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교육부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활용해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를 반복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다만, 교육과정 위반 여부, 정답률 등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는 어렵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정답률 36.8% 문제까지... 이게 다 킬러 문항?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으로부터 출발한 교육계의 대혼란과 파장을 생각하면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지금 장난하냐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킬러 문항으로 지목된 일부 문항은 정답률이 무려 36.8%에 이르고, 26개 중 15개는 정답률이 20%가 넘으니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날 킬러 문항으로 제시된 일부 문항은 교육과정평가원이 시험 당일 'EBS 교재와 연계한 문항'이라고 밝힌 바 있어 교육부의 발표는 혼선에 불을 지른 셈이다.

단언컨대, 오늘 교육부가 발표한 해당 문항들은 킬러 문항이 아니다. '킬러 문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합의된 게 없지만, 통상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났거나 정답률이 10%(수학 단답형은 3%) 미만인 경우를 가리킨다. 수학에서 정답률이 10% 미만인 문항이 7개 들어있는데, 이는 수학이라는 어려운 과목의 특성에서 비롯한 것이지 교육과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교육부는 "이렇게 킬러 문항이 많으니 이를 출제에서 배제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결론을 유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헛다리를 짚은 게 분명하다. 과열된 사교육에 뭔가 시그널을 주기 위해 수능 출제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억지로 킬러 문항의 범위를 넓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대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당장 교육과정평가원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으로 잣대를 삼으면 '물 수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상위 변별은 이제 물 건너갔다", "도대체 낼 문제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물 수능이 되면 일부 수험생은 올 1등급을 받아도 의대나 SKY 대학에 떨어질 수 있다. 표준점수가 낮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과목에 따라서는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리면 3등급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이렇게 2등급이 사라지는 '등급 블랭크' 사태를 막기 위해 적정 수의(정답률 20% 미만인)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해 왔는데, 해당 문항을 킬러 문항으로 분류하면 방법이 없다. 쉬운 문제를 모조리 없애고 고난도 문항으로 시험지를 가득 채우란 말인가.

출제기법 고도화로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씀처럼 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은 없어져야 한다. '이권 카르텔'이 심각한 지경이라면 수사도 필요하다. 킬러 문항으로 큰 이득을 얻는 일부를 빼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킬러 문항이 사라진 자리를 더 많은 초고난도 문항이 차지할 텐데, 이는 출제기법을 고도화해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 수능 시험과 관련된 광고 문구가 쓰여져 있다. 정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 연합뉴스
 
30년간 수능 문항을 출제해온 전문가 집단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누구보다도 출제기법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 최상위권 변별 없이는 서울 소재 대학이 신입생 정원의 40%를 정시로 선발하는 현행 대입제도가 불가능함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다. 결국, 최상위권 변별을 위한 초고난도 문항 수 증가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응시생은 총 46만 3675명(졸업생 19% 포함)이다.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 정원 3058명과 SKY 전체 신입생 정원 1만1511명을 더한 후 중복 계산된 SKY 의대 정원 366명을 빼면 1만4203명이란 숫자가 나온다. 이는 6월 모의평가 응시생을 기준으로 전체 수험생의 약 3%에 해당한다. 100명 중 3명만 SKY 또는 의대에 간다는 얘기다.

킬러 문항을 없애도 최상위 3%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밑에 위치한, 수능 9등급제에서 평균 3등급인 상위 23% 이내 학생들이 겪는 고통만 커질 뿐이다. 왜냐하면, 늘어난 초고난도 문항에 대비하느라고 더욱 사교육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편이 없는 한, 사교육 불패신화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관님, 원하시는 게 '물 수능'인가요?

대통령과 정부여당, 교육부가 진정 사교육으로 고통받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위로하고 사교육을 억제하고 싶다면, 킬러 문항이라는 '헛가지'를 쳐내는 데만 몰입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입시제도 개편에 나서야 한다. 사교육의 동력이 살인적 입시경쟁 체제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대 사교육 억제 정책이 왜 어김없이 실패했는지를 진정 모르는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차별받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사교육 대책도 공염불이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뽑았으니 어쩔 수 없고, 임명직인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는 이 질문을 던져야겠다.

"장관님, 물 수능으로 재앙이 발생하면 장관직에서 물러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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