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책, 분단국에 주는 울림

한준명 2023. 6. 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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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상처 보듬는 아이러니의 서사... 정지아의 자전적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한준명 기자]

▲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의 소설은 재밌다. 그런데 슬프다.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작가는 한국현대사가 겪었던 비극을 특유의 해학적 문체로 눙치며 감싼다.
ⓒ 한준명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p. 7)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첫 문장을 읽을 때의 생경함이 이랬을까? 이 소설의 첫머리는 딸 '아리(나)'가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며 시작된다. 그런데 좀 낯설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다니.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 정색하며 "진지 일색의 삶"을 산 것일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대학 강사인 딸이 3일 간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겪은 이야기다. 이때 만난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자기와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삶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의 이야기를 특유의 찰진 전라도 사투리와 해학적 문체로 눙치며 풀어낸다.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니 우리 집안에 유머가 있었다기보다 혁명을 목전에 둔 듯 그들의 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이 유머일 수밖에 없었다.(p.7)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장을 넘길 때마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그것도 평생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지도 못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그 쌓여온 세월의 아픔을 저자는 끝없이 웃음으로 눙친다. 소설의 첫장은 '비극적 상황을 유쾌하게 눙치는 능력'의 에필로그다.

빨치산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일지'

연좌제가 남아 있던 시절, 빨치산의 딸이라는 출생의 흔적은 나에게 상처로만 기억된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의 목에 칼을 대며 결혼을 반대할 만큼 빨치산과의 인연은 위험했다. 육사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던 큰집 길수오빠나, 형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한 대가로 평생 죄의식 속에 살았던 작은아버지의 삶이 그러하듯, 빨치산 아버지는 주변을 위태롭게 했고 불행하게 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문상을 오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본디 아버지를 철저히 외면하고 싶어했던 나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실체를 알아간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p.198) 생각하며, 죽으면 유골을 아무데나 뿌려 먼지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겠다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는 아버지를 구례 곳곳에 뿌리며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p.265)의 체온을 느낀다.

대부분 그러하듯, 역사는 그 시대에 존재했던 인간의 삶을 사실로 기록할 뿐, 그 사실 속을 살아갔던 이들의 사연을 전달하지 못한다. 역사에는 방향도 당위성도 없다.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여순사건으로 국방경비대 14연대가 빨치산이 된 뒤, 백운산과 지리산 일대에서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반란군 협조자 색출 작업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는지 역사는 사실로 기록한다.

그러나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p.28) 속에서,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남은 이들이 어떻게 질긴 목숨을 이어갔는지, 그들을 소탕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그 속에서 어떤 처참한 심정들이 뒤섞였을지 우리는 짐작만 할 따름이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p.169)
 
그 모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아버지가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다른 문제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동자가 45도 오른쪽을 보고 있는 아버지는, 사시 눈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영정사진으로 남았다(아버지의 눈동자는 우편향인데, 이건 좌편향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삶만큼 아이러니하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가 살아갔던 자본주의 세계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았던 그 다른 시선 너머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진짜 세상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p.102)며, 아버지식 위로의 방식으로,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p.141) 대했다. 아버지는 사람을 믿었다.
 
"고 봐라, 가시내야. 믿고 살 만허제?"(p. 57)
 
고 봐라, 내가 뭐랬냐? 믿으랬제?(p.143)
 
아버지는 고향에서 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몇년에 한번씩 바뀌는 정보과 담당 형사들과도 허물없이 농을 주고받으며 두루두루 잘 지낸다. 감시하는 형사와 술잔을 나누고 싶냐는 내 비아냥도,
"순겡은 사램 아니다냐?"
아버지는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먼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p.137)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p.138)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p.210)인 세상에서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 두 짐을 지고 살아왔구나. 작은아버지나 나는 유약해서, 혹은 세상이 좋아져서 한 어깨에 두 짐 못 지는 거라고, 스스로 나자빠진 것은 아닐까'(p.260)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빨치산 아버지와 화해한다.

자전적 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기>를 통해 정지아는 이데올로기 속에 박제되었던 아버지의 삶을 해방시켰다. 그런데 한편으로 평생 자신을 옥죄고 있었던 빨치산 딸로서의 삶, 아버지에 대한 애증, 그리고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1990)> 이후, 그녀의 수십 년 문학활동을 지배해 왔던 상처의 원천으로부터 기꺼이 해방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정지아는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가 살다간 구례의 산과 마을 곳곳에 뿌렸으리라.

종전 아닌 휴전 70주년,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이념과 성향을 내세우며 대립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서로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였던 이들이 뒤섞여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이 공존은 여간 위태로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상처가 엄존하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과거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뿐, 그들은 어떤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남았는지,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선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분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는 데, 젊은 세대가 민족의 통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아버지는 분개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현실인 걸 어쩌겠어요? 있는 현실을 아니라고 우길 셈이신가? 사회주의자께서?"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p.147)
 
 한덕수 국무총리가 6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 73주년 행사에 참석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참전용사 및 내빈들과 묵념하고 있다. 2023.6.25
ⓒ 연합뉴스
 
돌아온 6.25, 그러나 '분단의 극복'이나 '통일의 과제' 같은 거창한 명제는 2023년 현재 다시 '빨갱이'나 '빨치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약 2시간이면 고속철로 한국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세상, 그러나 조금 더 위로 못 가고 조금 더 멀리 못 가는 현실이 나는 조금 불편할 따름이다.

이렇게 백 년 가겠나, 천 년 가겠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 철학사전에 박제된 게 언젠데 이제는 그만 싸우고 좀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결국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아 살아가야할 우리가, 이 좁다란 울타리에서 해방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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