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인물]단독 재집권 성공한 그리스 경제 총리 '미초타키스'
국가 신용등급 상향 기대…금융권 경험 도움
10년 만에 그리스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25일(현지시간)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리스 2차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중도 우파성향의 신민민주당(ND·신민당)은 제1 야당과 득표율에서만 20%포인트 이상 격차를 낼 정도로 압승했다. 은행가 출신의 미초타키스 총리가 내딛는 경제 회복 발걸음에 그리스 국민들이 다시 한번 강력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 연정 없이 2차 총선 치른 신민당…단독 과반 확보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리스 내무부는 개표가 99% 이상 진행된 가운데 중도 우파 성향의 단독 집권당인 신민당이 40.5%를 득표해 17.8%에 그친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크게 앞섰다고 밝혔다.
신민당은 전체 의석 300석 중 158석을 차지하며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2차 총선에서는 제1당이 득표율에 따라 최소 20석에서 최대 50석의 보너스 의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총선에서는 신민당과 시리자가 각각 40.8%, 20.1%를 득표해 신민당이 전체 의석 중 과반 의석에 5석이 부족한 146석을 확보했다. 그리스에서 제1당이 단독 과반에 실패하면 보통 연정 협상이 이뤄지지만 미초타키스 총리는 '연정은 없다'는 입장을 내놨고 결국 2차 총선이 진행됐다.
그렇게 신민당은 2차 총선에서 승기를 잡았고, 보너스 의석을 바탕으로 넉넉하게 단독 과반을 확보하게 됐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연임도 확실시된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총선 승리 연설에 나서 "국민들이 우리에게 넉넉한 과반 의석을 준 것은 개혁을 추진하라는 명령"이라며 "임금 인상과 의료 시스템 개혁을 통해 견실한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 IMF 구제금융 조기 졸업에 실업률 '뚝'·성장률 '쑥'신민당의 승리 요인은 바로 미초타키스 총리의 경제 정책이다. 그리스는 2009년부터 시작된 유럽 국가 부채 위기를 겪은 국가 중 하나였다. 2010년 재정위기로 국가부도 사태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2018년까지도 3개의 구제 금융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할 정도로 경제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 미초타키스 총리 집권 이후 그리스 경제는 빠르게 회복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3월 IMF 구제금융을 조기 졸업했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경제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와 같은 시장 친화적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였다. 앞서 쏟아진 포퓰리즘 정책을 거둬들이고 정부 지출을 억제하는 한편 무상의료제도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 '친(親)시장 기조'를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감세 정책을 통해 지난해 그리스의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실업률도 2015년 27.5%에서 12.2%까지 떨어졌다. 그리스 경제 성장률은 2021년 8.4%, 지난해 5.9%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가장 경제 성장이 도드라진 국가로 그리스를 꼽았다.
무엇보다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이 투자등급으로의 회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2차 총선을 앞두고 유세 현장에서 "우리의 첫번째 목표는 투자 등급 회복"이라면서 "선거 이후 한달 만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권 초 미초타키스 총리는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맞딱들였으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그리스는 재정 여건과 공공보건의료 시스템 문제로 취약 국가로 꼽혔지만 미초타키스 내각이 신속하게 봉쇄 조치에 나서고 감염자를 추적하는 한편 백신 접종 캠페인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선방했다는 것이다.
아테네대의 람프리니 로리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10년 전 경제적 붕괴를 경험한 나라에서 이러한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 물질적으로, 또 심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글로벌 금융권 경험한 총리…정치 명문가 출신이러한 경제 정책은 미초타키스 총리의 금융권 업무 경험이 빛을 발한 결과로 보인다. 1968년생으로 올해 55세인 그는 아테네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학사를, 스탠퍼드대 국제정책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은 그는 영국 런던 체이스은행,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 등에서 일했다. 그는 경제적 감각과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 경제를 차근차근 바로 잡아왔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2004년 처음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이력 가운데 눈에 띠는 점은 바로 그리스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리스 보수파의 거두로 1990~1993년 총리를 지낸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장남이다. 아버지가 1984년부터 10년간 당수를 지낸 신민당을 2016년 1월부터 이끌어 온 아들 미초타키스는 당 대표로 지휘한 2019년 유럽의회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누나인 도라 바코얀니스는 여성 최초의 아테네 시장,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고 외조카인 코스타스 바코얀니스는 2019년 6월 아테네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당장은 미초타키스 총리가 압도적인 표차로 승기를 잡았지만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지만 지난해 터진 '그리스판 워터케이트' 도청 스캔들, 올해 2월 열차 충돌 참사, 최근 난민선 비극까지 현 정권에 타격을 줄만한 악재가 쏟아진 상태다.
그리스 국가정보국이 야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 니코스 안드룰라키스 대표를 비롯해 언론인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스캔들에 대해 미초타키스 총리는 '몰랐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책임론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게 외신들의 평가다.
또 지난 2월 발생한 그리스 사상 최악의 열차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론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350명을 싣고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열차가 시속 150km로 달리다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 57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대학생인 데다 노후한 철도 시스템을 정부가 방치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그리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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