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극환호와 극대노를 오가는 노란 샤쓰의 이정효 감독

서호정 기자 2023. 6. 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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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지난 24일 열린 광주FC와 전북현대의 K리그1 19라운드 종료 후 중계를 맡은 스카이스포츠는 맺음을 알리는 노래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틀었다. 1961년에 공개된 옛 노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직관적인 이유에서였다. 최근 이정효 감독은 홈 경기에 잇달아 노란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정효 감독의 노란 와이셔츠는 현재 광주 팬들에겐 기분 좋은 승리의 부적이다. 6월 3일 포항스틸러스와의 경기에 처음 노란 와이셔츠와 함께 등장한 이정효 감독은 4-2로 승리하며 원정에서의 패배를 갚았다. 나흘 뒤 이어진 수원삼성전 2-1 승리, 그리고 이번 전북전까지 홈 3연승을 달성했다. 모두 같은 정장, 그리고 노란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노란색의 와이셔츠는 흔히 볼 수 없기도 하지만, 다른 옷과 맞추기도 쉽지 않다. 어디서 그런 와이셔츠를 구했느냐는 질문에 이정효 감독은 "긴 시간 친분을 맺고 있는 지인이 선물해 주셨다. 나름 맞춤 옷이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광주의 팀 메인 컬러인 노란색에 착안해서 받은 지인의 선물이었지만 이정효 감독도 선뜻 입기는 어려웠다. 선물을 받고도 한참 옷장에 두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선물을 해 준 지인의 성의를 고려해 처음으로 입고 나선 게 포항전이었다. 앞서 원정 3연전에서 2승 1무(FA컵 포함)를 기록하며 4월과 5월 사이 6경기 연속 무승(2무 4패)의 부진에서 벗어난 광주는 포항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상승세를 탔다. 전북전까지 7경기 연속 무패(5승 2무, FA컵 포함)를 기록 중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 그리고 완벽주의자인 이정효 감독은 분석, 준비의 힘을 믿는다. 하지만 노란 와이셔츠가 주는 좋은 기운을 마냥 배제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앞으로 홈 경기는 노란 와이셔츠를 입고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원정은 캐주얼하게 티셔츠를 입었었고, 선물 받은 노란 와이셔츠가 단벌이라 3~4일 경기 간격으로 챙겨 입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추가로 반가운 소식이라면 축구 팬들 사이에서 노란 와이셔츠가 관심을 끌자 지인이 추가로 맞춰서 선물을 주겠다고 한 것. 


와이셔츠 이야기로 그 답지 않게 너스레를 떤 이정효 감독은 금세 전북전 복기를 시작했다. 사실 쉬운 경기는 아니었다. 루마니아 출신이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전북 사령탑에 부임하고 치르는 첫 경기였기 때문에 분석의 난이도가 높았다. 이정효 감독은 와이스카우트(Wyscout, 글로벌 축구 영상 제공 플랫폼) 계정을 통해 페트레스쿠 감독이 루마니아에서 이끌던 1907클루지의 경기를 여럿 다운 받았다. 광주는 이정효 감독의 요청으로 현재 2개의 와이스카우트 계정을 보유 중이고, 이것을 통해 외국인 선수 영입 시 경기력 분석을 해 왔다. 한국 무대에 처음 입성한 외국인 감독의 경기 스타일 분석에도 활용된 것이다. 


박원교 전력 분석 코치, 이태식 분석관과 함께 A매치 휴식기에 끊임없이 경기를 보며 디테일하게 분석해 여러 전술적 특징을 정리했다. 그걸 기반으로 대응 전략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정효 감독은 "수비는 기본적으로 라인을 올리면서 치열한 맨투맨 수비 방식을 선호하는 게 보였다. 포항 김기동 감독님의 수비 전술과 성향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광주는 이전과 달리 3, 4명의 복잡한 스위칭 못지 않게 공격수들이 1대1 드리블 돌파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공격 전환 과정에서 전북의 높은 수비라인을 자신 있게 벗겨내며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 엄지성, 이순민 등이 위협적인 돌파를 선보였다.


페트레스쿠 감독의 공격 전개 방식에 대해선 "과거 최강희 감독님처럼 선 굵은 스타일이다. 크로스와 롱볼 활용이 많다고 분석했다. 구스타보나 조규성을 이용한 1차 공격도 조심해야 하지만 세컨드볼 싸움을 강조했다. 우리 수비수들에게 박스 안에서 인내하고, 집중하라고 강조했다"라고 말한 이정효 감독이었다. 골키퍼 이준의 선방까지 더해지며 광주는 결국 전북의 화려한 공격진을 상대로 무실점에 성공했다. 



승부의 방향을 광주 쪽으로 확실히 가져온 선제골은 일주일 간 철저히 준비한 성과였다. 광주는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김한길이 뒤로 빼고, 이민기가 다시 두현석에게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전북 수비가 라인의 밸런스를 잃고 깨졌고 두현석의 크로스를 기습적으로 침투한 이순민이 백헤더로 연결, 골망을 흔들었다. 


광주의 세트피스 훈련은 이정규 수석코치가 전담한다. 이정효 감독은 "훈련 시간 중 세트피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정규 수석코치가 준비한 것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 한 골을 위해 지난 일주일 내내 미친 듯이 준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정규 수석코치는 훈련 시간 외에도 두현석, 김한길 등 팀의 주요 키커를 불러 여러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번 전북전 세트피스 준비에는 레프트백 이민기까지 불렀다. 전북전 선제골 장면을 철저하게 시뮬레이션 하며 준비한 것이다. 


이정효 감독은 "이번 세트피스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민기였다. 자신 있게 연결하라고 했다. 이정규 코치의 아이디어도 완벽했다. 전북 수비진의 높이가 우리보다 좋다. 바로 올려서는 힘들다고 봐서 수비라인을 끌어내고, 이순민이 침투하는 걸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준비와 디테일의 힘이다. 이정규 수석코치와 선수들이 고생한 보람이 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교체 전략도 적중했다. 후반 41분 투입된 이건희가 5분 뒤 쐐기골을 만들었다. 기쁨에 찬 이정효 감독은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으로 앞서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추가시간 막판 이건희가 아크 오른쪽에서 중거리슛 시도를 한 것이 골대를 크게 벗어나자 이정효 감독 특유의 '극대노' 표정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극대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대전전 때 우리가 막판에 경기 운영상 미스를 범했다. 충분히 소유하면서 확실히 만들어 가도 되는데 무리한 슈팅을 했고, 그렇게 넘겨준 공격권에서 대전이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었다. 휴식기 동안 우리 선수들에게 상황 인지와 경기 운영을 강조했다. 전북전 마지막에 화를 낸 것도 선수들이 그런 약속을 잊었기 때문이다. 엄지성과 이건희가 그 타이밍에 슈팅하는 것보다 더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하며 우리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었다. 더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좋은 걸 취해야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다는 걸 선수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광주는 나흘 만에 전북과 다시 만난다. 28일 열리는 FA컵 8강전을 위해 원정을 떠나야 한다. 이정효 감독은 깜짝 발언을 했다. FA컵 원정을 지난 주말 경기에 나서지 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15명 인원으로 치를 계획이라는 것. FA컵은 선발 11명과 대기 7명을 둘 수 있는데, 스스로가 교체 면에서 핸디캡을 안고 가겠다는 의미다. 


"냉철하게 판단했다. 지금 광주는 리그가 우선이다. FA컵 후 나흘 뒤 울산과의 홈 경기가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라며 이유를 설명한 이정효 감독은 승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경기를 위해 동기부여를 갖고 준비한 선수들이 있다. 만일 우리 특공대가 8강을 넘어가면 그때는 FA컵이 주는 큰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라는 말로 또 한번의 흥미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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