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7억 소송…손자 잃은 할머니, 2가지 증거 내놨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운전자 측이 급발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였다는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두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최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하 변호사는 준비서면을 통해 사고기록장치(EDR)를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운전자의 책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발진 주장 첫 번째 이유: “EDR 신뢰성 없다”
원고 측은 과거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운전자가 차량이 오른쪽으로 뒤집히면서도 가속페달을 99% 계속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가 있다’며 이를 EDR을 신뢰할 수 없는 근거로 제시했다. 차량 전복 과정에서 몸이 옆으로 쓰러지기 때문에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변함없이 100% 또는 99% 똑같이 지속해서 밟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또 ‘차량이 벽을 뚫고 나가면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100% 계속 밟았다’는 EDR 기록 사례 역시 에어백이 터져 얼굴에 맞으면서 자세의 균형을 잃은 운전자가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과거 2건의 급발진 사례와 이번 사건 운전자 A씨의 사례 모두 EDR 기록이 '가속페달 변위량 99% 혹은 100%, 브레이크 OFF'인 점과 이 같은 기록을 두고 자동차 분야 전문 교수가 ‘급발진 사고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현상’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점을 들어 EDR의 신뢰성 상실을 강조했다.
급발진 주장 두 번째 이유: “30초간 페달 착각 있을 수 없다”
A씨 측은 또 사망사고를 내고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운전자가 형사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근 판례와 A씨 사건의 유사성을 짚었다.
대전지법은 이달 중순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기소된 50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지법의 재판부는 ‘약 13초 동안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는 과실을 범하는 운전자를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 측 변호인은 ‘13초보다 2배 더 길게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는 더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또 대전지법에서 급발진 차량의 속도가 시속 10.5㎞→37.3㎞→45.5㎞→54.1㎞→63.5㎞→68㎞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가속페달 변위량이 50% 이하로 계산되었던 사실을 근거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판단도 A씨 사례에 적용 가능하다고 내세웠다.
강릉사고 때는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100% 가속 페달을 밟았다(풀 액셀)'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므로 EDR 감정을 통해 급발진을 입증할 수 있다는 취지다.
7억6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전
강릉지원 민사2부는 오는 27일 A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열고, 전문 감정인을 선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A씨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또 A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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