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연예단상⑭] 구사일생의 법칙? ‘귀공자’ 빌런 김선호
텍스트(Text)는 문자, 이미지를 비롯한 시각 언어나 소리 등 일정한 기호로 이루어진 복합체를 의미한다. 콘텍스트(Context)는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을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순수한 텍스트는 극소수이며, 모두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텍스트를 해석할 때, 텍스트의 주변 상황(콘텍스트)을 생각하며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해간다. 그러나 모두 같은 콘텍스트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마다 의미를 다르게 파악한다. (리브레 위키, 네이버 사전 등 참조)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 제공·공동제작 스튜디오앤뉴, 제작 영화사 금월, 공동제공·배급 ㈜NEW)에 대입해 얘기하면, 영화 ‘귀공자’는 하나의 텍스트다. 현대 사회에서 감독 박훈정을 수장으로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완성해 낸 이 텍스트는 그들이 이것을 만들고 연기할 때의 의도 그대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다. 완성되어 세상에 나와 관객을 만나는 순간, 해석된다.
관객인 내가 텍스트를 해석할 때면 그 텍스트를 둘러싼 주변 요소와 상황 등이 끼어든다. 일테면 박훈정 감독의 전작들과 그에 대한 평가, 배우 김선호의 연기력이나 사생활 논란에 관련해 내가 가지고 있는 호감도나 의견, 범죄 액션물에 대한 호 또는 불호, 김강우 강태구 고아라 이기영 허준석 최정우 등 이미 각인된 배우들이든 잘 몰랐던 배우들에 대한 연기력 탐색과 호불호, 화면의 색감과 인물들의 패션이나 음악과 음향 등 내가 평소 중시하는 영화 요소 등에 관한 생각이 끊임없이 끼어들며 영화의 재미를 확장하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한다.
모든 관객이 정보, 의견, 감정 등에서 똑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는 이마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과 평가가 다르다. 거칠게 이분화해 말하면 그래서 6월 21일 개봉해 닷새 동안 34만 명이 관람한 현재, 누구는 별로라고 하고 누구든 재미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둘 중 어느 쪽인지를 말하려는 것에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있지 않다. 영화 ‘귀공자’를 보는 가운데 끼어들었던 여러 맥락 중, 유독 강했던 것 한 가지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평소와 다른 지점이기도 해서 화제로 삼는다.
먼저 영화 ‘귀공자’를 즐겼고 보통 이상의 재미를 느꼈다. 이 대목에서 의문문이 하나 머릿속에 생긴다.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관람 내내 따라다닌 ‘그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애초 이 정도의 만족감을 얻을 작품이었나.
‘그 생각’은 바로 이거였다. 아, 이 영화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이후 배우 김선호의 첫 번째 출연작으로 볼 수 있었다면, 자연인 김선호와 관련해 쏟아진 이야깃거리들이 생략된 채 곧장 홍두식에서 귀공자 캐릭터로 직행할 수 있었다면, 이라는 실현불가능한 ‘전제’였다.
최대한 노력했으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가 머릿속에 들어오니 계속 코끼리를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의 내 안의 두 사람이 싸웠다. a: 그 순박하고 다감한 홍두식 다음으로 뽀얗게 잘생겨서 더욱, 환한 미소 속에 뺀질거려서 더욱, 섬뜩하고 얄미웠을 귀공자를 만났다면 배우 김선호의 변화무쌍 연기력에 감탄했을 텐데. b: 아니, 똑같은 배우가 하는 연기를 두고 해석을 달리하는 건 너일 뿐이야. a: 논란 뒤 촬영한 거 아냐, 과연 그는 논란이 없었던 때와 똑같이 연기할 수 있었을까. b: 그는 프로야!
이런 생각을 한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배우 김선호가 참으로 연기를 맛깔나게 잘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못 했다면 혼자 고민하고 혼자 안타까워하는 오지랖조차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귀공자에게서 그저 잔악무도한 빌런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김선호 특유의 선함이 이중 노출됐다.
두 번째와 관련해 내 안의 두 사람은 얘기를 좀 더 이어갔다. a: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을 의식한 건가, 나쁘게만 보여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나. b: 애초의 설정, 의도된 연기일 거야. a: 흔히 논란 후에는 선역보다 악역이 정답이라고 하지만, 그래야 관객이 보기에 덜 불편하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정말 그것이 구사일생의 정답이었을까. 이렇게 선한 이미지를 감출 수 없으면 그냥 선역으로 복귀하는 게 좋았겠어. 사실 논란도 해프닝으로 끝났잖아, b: 영화를 끝까지 봐, ‘절대 악’으로 연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맞다. 쿠키 영상까지 영화를 끝까지 보면 배우 김선호의 연기결과 이를 디렉팅 한 감독 박훈정의 선택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원류까지 거슬러 올라 생각해 보면, 빌런에게 왜 ‘귀공자’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왜 특유의 능청과 환함을 지닌 배우 김선호가 제격의 캐스팅인지 알 수 있다.
결국 김선호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홍두식처럼 기죽고 비뚤어질 상황에서도 건강하게 자라 마음 씀씀이 좋은 어른으로 자란 인물이든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할 수 없어 갑갑하나) 영화 ‘귀공자’의 그 남자처럼 겉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같은 일을 해도 남다르고, 내세우지 않아도 계획이 있는 킬러든 모두 연기 가능한 ‘괴물 소화력’의 배우다. 감독 박훈정이 고집한 이유가 있다.
젊은 원빈을 보는 듯 빼어난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을 지닌 신인 강태주, 훤칠해서 더 악랄해 보이는 연기의 원조 김강우, 똑같은 목적하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타깃을 향해 질주하며 벌어지는 충돌과 배신과 반전으로 얽힌 스토리,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스트레이트로 쭉 밀고 나간 박훈정의 연출 방식 등 영화를 볼 이유는 많다. 더불어, 단순히 ‘김선호 복귀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것과 관련된 키워드에 국한하지 말고, ‘김선호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즐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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