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그 영화로 돌아보는 K리그 인종차별 사건

김성호 2023. 6. 2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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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01] 울산 현대 인종차별 사건과 <택시> 속 한국인

[김성호 기자]

올 시즌 놀랍게 성장한 경기력과 불어난 관중으로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는 K리그에 때 아닌 논란이 있었다. 그간 한국에선 표면화되지 않았던 인종차별 사건이 K리그, 그것도 1부 리그 최강팀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서 발생해 징계위까지 오른 것이다.

내막은 이러하다. 선수들이 SNS에서 댓글로 대화를 나누며 한때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었던 태국 국가대표 수비수 사살락 하이쁘라콘을 조롱했다는 등이 논란의 골자였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선수를 빗대 아시아 쿼터라 표현하고, 심지어 실제 아시아 쿼터로 뛴 선수인 사살락의 실명까지 거론한 것이다.

선수들이 이것이 인종차별이며 사살락에 대한 악의를 갖고 행한 행동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아시아 쿼터란 제도, 또 이를 통해 K리그에 진입한 동남아 출신 선수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는 점 만큼은 감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 하겠다.
  
▲ 사살락 사살락 하이쁘라콘의 가족들이 전북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를 보는 모습
ⓒ 사살락
 
의도가 없었다면 차별이 아닐까?

아시아 쿼터란 무엇인가. K리그는 아시아 시장 확대를 노리고 정규 외국인 선수에 더해 1명의 아시아 국적 선수를 추가로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하여 상당수 팀이 일본과 호주 등 한국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국적의 선수들을 영입해 활용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시리아 등 기존에 K리그에서 만날 수 없었던 국적의 선수들이 영입되어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사살락 또한 이렇게 영입되었으나 경쟁에서 밀려 얼마 출전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바 있다.

실제로 많은 동남아 출신 선수가 경쟁에서 밀려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자리 잡을 밖에 없다. 특히 동남아 출신 아시아 쿼터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많은 선수와 팬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이다.

사건과 관련하여 K리그 연맹은 인종차별적 댓글이 확인된 박용우, 이명재, 이규성에게 1경기 출장정지를 내렸다. 규정집엔 인종차별적 언동 등의 제재가 '10경기 이상의 출장정지'로 명문화되어 있어 사실상 휴가에 가까운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이 들끓었으나 차별행위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따끔한 교훈이 되었으면 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한국인 또한 인종차별, 특히 악의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한국인이 분노했던 그 시절 그 장면
 
▲ 택시 포스터
ⓒ 유로파코프
 
한때 한국인들이 분노했던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제5원소>와 <레옹>의 전 세계적 성공으로 일약 일류 반열에 오른 뤽 베송이 야심차게 제작한 <택시>가 바로 그 영화다. 이 영화에선 한국인 택시기사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1998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이 출연하는 서양 영화가 많지 않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한국에서도 입소문을 타는 베송의 액션영화가 아닌가 말이다.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이 장면은 주인공들이 한 택시를 지켜보며 시작된다. 택시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내린 사내는 길가에서 태극권을 연상시키는 동작을 취한다. 이를 보며 주인공인 에밀리앙(프레데릭 디팡탈 분)이 "뭘 하는 거지?" 하고 묻자 다니엘(새미 나세리 분)은 이렇게 답한다. "한국인이에요. 조국이 가난해서 12시간 일해요" 하고. 다시 에밀리앙이 "그래도 잠은 자겠지, 사람인데" 하고 말하자 에밀리앙은 저들을 잘 지켜보라고 답한다.

그리고 논란이 된 장면,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가 주위를 살피고 트렁크를 여는 것이다. 트렁크 안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 또한 한국인, 그들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서로 자리를 바꾼다. 그 좁은 트렁크 안에는 이불이 깔려 있고 이제까지 운전을 했던 기사는 몸을 구기고 들어가 잠을 청한다. 신발까지 그대로 신은 채로.
 
▲ 택시 스틸컷
ⓒ 유로파코프
 
뤽 베송의 변명, 그러나...

에밀리앙이 "택시 한 대, 번호판 하나, 면허 하나에 운전사만 둘. 얼굴도 비슷하죠"라고 말하자 다니엘은 "놀랍군" 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장면에 대하여 이후 한국을 찾은 베송은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개그로 봐달라"고 말했다. 제게 한국에 대해 어떠한 악의도 없었고, 이것은 그저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대다수가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그의 말이 사실이라 믿는다.

그러나 악의가 없었다 하여 이 장면이 바람직하냐, 혹은 인종차별적이지 않은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런 류의 웃음이란 개그를 시도한 이와 이를 받아들이는 이 사이에 어떠한 공감대가 있을 때 성립하는 것으로, 적어도 유럽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지 않고는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건 이들이 제 기본적인 생활마저 얼마간 포기하고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돈이 되는 일에 매달린다는 뜻이다. 또 그건 태극권 동작이며 '국적이 중요치 않다'는 표현과 맞물려 아시아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게 흔히 가해지던 인식이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생성되기까지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 이민자들의 행동이 선행되었을 게 분명하다. 아마도 잠을 쫓아가며 남보다 더 오래, 열심히 일했을 이런 이민자들이 현지인의 이익을 당장은 침해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성실한 노동으로 보이는 것이 저들 눈에는 이기적이고 악착같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 같은 묘사가 차별적이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장면이 그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차별의 씨앗으로 발화하지 않는다고는 또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같은 장면을 우리가 만드는 영화며 드라마, 각종 콘텐츠와 모든 산업에서 활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건 올해 들어 역대급 시즌을 맞은 K리그 또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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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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