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랑 벚꽃 말고 듣고 싶은 다른 얘기 - 아이유, 다른 시험을 노래하다
[김광식 기자]
"길었던 겨우내 줄곧 품이 좀 남는 밤색 코트 (...) / 사람들 말이 너만 아직도 왜 그러니 (...)
손 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내게 / 달콤한 봄바람이 너무해
나만 빼고 다 사랑에 빠져 봄노래를 부르고 / 꽃잎이 피어나 눈 앞에 살랑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 / 봄 사랑 벚꽃 말고 (...)
손에 닿지도 않을 말로 / 날 꿈틀거리게 하지 말어 (...)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 / 남들보다 절실한 사랑 노래 가사를 불러 봐"
아이유가 부른 노래 <봄 사랑 벚꽃 말고>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아들과 강아지가 다투던 일이 생각난다. "내 우디 내 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가보았더니 아들이 애지중지 아끼는 토이 스토리 인형을 강아지가 침대 밑으로 가져가 꽉 물고 있다. "물어뜯기만 해 봐!" 뺏으려 하면 더 꽉 물고 으르렁거린다. 하나 또 사면 되지 했더니 인형 뽑기로 겨우 손에 넣었단다.
인형 뽑기가 인기다. 인형 뽑기 열풍의 비밀은 집게에 있다. 그 비밀은 잘 집을 수 없도록 만든 집게의 허술한 구조에 있다. 집게의 구조를 누구나 원하는 인형을 쉽게 집을 수 있도록 촘촘하게 만들면 인형 뽑기는 더 이상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수 없다.
인형 뽑기 게임뿐만이 아니다. 모든 게임은 아무나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도록 그 구조를 까다롭게 설계해 놓는다. 농구대가 지나치게 낮거나 공을 넣는 고리가 지나치게 넓다면, 축구 골대가 지나치게 높거나 넓으면, 농구도 축구도 더 이상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수 없다.
프랑스 사상가 부르디외는 책 <구별짓기>에서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현대판 불평등 카스트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게임 전략이 구별짓기라고 한다. 구별짓기의 기본원리는 아무나 쉽게 넘어올 수 없도록 장벽을 높이 쌓는 일이다. 이러한 구별짓기는 단순히 경제적 구별짓기 게임을 넘어 문화적 구별짓기 게임으로 나타난다.
문화적 구별짓기 전략으로 그나마 쉬운 것이 비싼 장신구나 예술품처럼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물질적인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전략은 최고의 학력이나 전문 자격증처럼 아무나 쉽게 갖출 수 없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전략은 아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세련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몸에 밴 삶의 방식이나 성향 또는 취향을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부른다. 아비투스야말로 구별짓기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취향[아비투스]은 (...)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 구별 지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별 지어진다."
- 부르디외, <구별짓기>
물론 이러한 문화적 구별짓기 게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임은 경제적 구별짓기 게임이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구별짓기 게임과 문화적 구별짓기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임은 대학입학생 뽑기 게임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평균 소득은 대학졸업자에 비하여 63%며,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대학졸업자가 클래식 듣기를 더 좋아하는 몸에 밴 취향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대학입학생 뽑기 게임에 대해 '학교교육' 안에서만 출제하라고 한마디 했더니 난리가 났다. 변별력이 없어진다는 비판이 무성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입학생 뽑기 게임 전문가도 아닌데 게임 규칙에 대해 경솔하게 지시를 내렸다고 비판하니 누군가는 그가 게임 반칙에 대해 수사를 많이 했으니 전문가라고 되받아쳤다. 사실 몇 년 전 장관의 딸이 그 게임에서 반칙을 했다고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는데, 그가 그 수사를 했던 검찰의 우두머리였다.
그 게임이 그토록 치열하고 규칙과 반칙에 대해 민감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명문대학 입학 문이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도록 좁게 만들어져서가 아닐까? 아들이 사랑하는 강아지에게 자신의 인형을 반칙으로 가로챘다고 화를 내는 까닭이 아무나 쉽게 인형을 뽑을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집게의 구조 때문이듯이.
봄이 되면 손 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이가 있어도 봄 사랑 벚꽃 얘기만 하듯이, 가을이 되면 대학 캠퍼스를 거닐 기회가 없는 이가 있어도 가을 수능 SKY 얘기만 한다. 물론 올해는 여름부터 벌써 그 얘기가 한창이다. 모두들 SKY에 들어갈 게임의 규칙이나 반칙 얘기에만 열을 올릴 때, 부르디외는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 스카이 캐슬의 좁디좁은 '구별짓기' 문을 한껏 비웃으며 무력화하는 기막히게 재미있는 축구 게임을 소개한다.
정해진 유니폼이 없다. 헐렁한 셔츠와 바지만 입으면 된다. 축구화가 없어도 된다. 심지어 힐로 차기도 한다. 가끔 정강이가 차이는 불편함은 있지만 괜찮다. 11명을 다 채우는 경우도 드물다. 게임 중에 이쪽저쪽 대충 균형을 맞춰 마음대로 들어간다. 심판도 없고 규칙도 느슨하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집념도 없다. 반칙에 대해서도 한없이 너그럽다. 재미를 위한 게임이니까. 한쪽이 너무 강하면 선수를 맞바꿔 균형을 잡는다. 축구를 잘하는 이는 자기가 잡은 공을 골고루 건네준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막히게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을까? 대학입학생 뽑기를 그냥 제비뽑기로 하면 어떨까? 고교평준화처럼 대학평준화를 해보자. 독일이나 프랑스에선 이미 하고 있다. 하향평준화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 나라들은 우리보다 잘 사니까. 물론 대학입학생 뽑기 열풍의 근본 원인인 소득 양극화를 줄이는 노력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학벌이라는 구별짓기를 위한 광란의 게임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기막히게 재미있는 게임을 보고 싶다.
벚꽃잎이 피어나 눈 앞에 살랑거리고 다 사랑에 빠져 봄 노래를 부르며 모두들 봄 사랑 벚꽃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뻔한 화사한 봄 사랑 벚꽃 말고 다른 얘기가 듣고 싶다. 봄이 왔어도 길었던 겨우내 줄곧 품이 좀 남는 밤색 코트 속에 자신을 쏙 감추고 걸음을 재촉해 걷는 사람보고 "너만 아직도 왜 그러니"라고 말하기보다 그의 다른 얘기를 듣고 싶다.
손 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그에게 손에 닿지도 않을 달콤한 봄바람, 봄 노래, 사랑 노래들은 너무하다. 남들보다 절실한 그만의 다른 사랑 노래를 듣고 싶다. 잘난 정도를 구별하여 뽑는 연인 뽑기 사랑 게임이 아니라 잘나지 못해도 마음이 가는 대로 인연이 닿는 대로 연인을 뽑는 남들보다 절실한 기막히게 재미있는 사랑 게임을 보고 싶다.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봄 사랑 벚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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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절실한 사랑 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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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학지성 In&Ou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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