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출로 망한 전세시장, 대출로 살리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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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금대출이 워낙 잘 나오니까 집주인들이 보증금 몇천만원 올리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죠."
당시만 해도 전세대출 금리는 2%대로 낮았고, 청년을 위한 정부의 전세대출 지원도 많았다.
만약 정부가 꼭 단기 규제 완화책을 펼쳐야 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전세대출 문제를 개선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먼저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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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금대출이 워낙 잘 나오니까 집주인들이 보증금 몇천만원 올리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죠."
3년 전 영등포구 한 주택단지에서 전세시장 분위기를 취재하던 중 공인중개사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만 해도 전세대출 금리는 2%대로 낮았고, 청년을 위한 정부의 전세대출 지원도 많았다. 임차인들은 이자부담이 적으니 연봉의 몇배에 달하는 대출을 턱턱 잘 받았고 전셋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서울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2020년 4억원대에서 이듬해 6억원대가 됐다. 도심에선 원룸도 1억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 역전세난의 핵심 원인은 무분별한 전세대출이다. 오랜 저금리 환경이 배경이지만, 정부의 동조도 한 몫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세대출을 본격적으로 확대 도입했고,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사라'는 대출 완화 정책을 펼쳤다. 문재인 정부는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영끌족'을 양산했다. 그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전세대출은 '갭투자' 열풍과 함께 '돈없는 집주인'을 늘렸고, 이는 최근 역전세난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대출로 쌓인 전셋값이 떨어져 피해자가 늘자 정부는 또다시 전세대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임대인의 전세금 반환 목적에 한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이르면 다음주 발표할 예정이다. 갭투자로 전세시장 불안을 야기한 임대인을 돕는 게 적절치 않다는 논란에 정부는 특정 기간 임대차 계약만 적용하는 등 제한을 두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부채로 발생한 위기를 부채를 더 늘려 해소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부동산 불패론자'들 중 상당수는 경기와 민심에 민감한 정부가 결코 집값, 전셋값 하락을 방치하지 않을 거라 말한다. 섣부른 대출 규제 완화는 이렇게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을 왜곡하고, 가계대출 연착륙을 어렵게 만든다. 만약 정부가 꼭 단기 규제 완화책을 펼쳐야 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전세대출 문제를 개선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먼저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세대출도 DSR 규제에 포함하는 방안을 더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과도한 전세대출을 제한해 전셋값 거품을 줄이고, 깡통전세의 원인인 높은 전세가율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세대출이 DSR에 포함되면 전세대출을 받은 서민이 다른 대출을 받기 힘들어져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신용대출처럼 전세대출의 산정만기를 5년(대출 5분의 1만 적용) 혹은 그 이상으로 늘려 부담을 조정하는 방안도 충분히 가능하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4일 한국경제학회가 개최한 포럼에서 "전세문제는 서민주거 지원이 아니라 시스템 관리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전세대출이 문제라는 것은 정부, 국회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서민 주거와 직접 연결되는 전세대출을 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금융안정보다는 당장 드러나는 민심이 더 중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세문제가 곪아터져 국민 이해도가 높아진 지금이 적기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면 역전세난은 또 일어난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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