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오염수, ‘냄비 근성’ 걱정된다
여당의 안전 강조 모두 문제
중요한 것은 일본의 책임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반일’을 주된 전략으로 채택한 듯하다. 국회 대정부질문, 지도부 장외 일정 모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일색이다. 전남 신안에서 천일염이 동나고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 일선에서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까지 도입하는 등 국민 불안이 표면에 드러나자 이것이 총선에서 먹힐 것으로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많은 일본 전문가들도 오염수 문제는 파급력이 클 것이라 전망한다. 한 전직 주일 총영사는 강제징용과 비교하며 “오염수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했다. 강제징용은 과거에 이미 끝난 사안인 데다 해당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 반해 오염수는 미래에 지속적으로 이어질 문제이고 사실상 전 국민에게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일본 기자들은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처음에나 시끄럽겠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한 일본대사관 측 분위기도 비슷했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일염 사재기 사태가 다소 과도하고 의아하다는 식이었다.
이들에게는 강제징용 문제가 한 선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강제징용도 처음엔 피해자 측의 강한 반발과 이를 두둔하며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야당으로 인해 온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듯했지만, 정부 해법이 나온 지 반년도 되지 않은 현재 이 문제는 소강상태가 돼버렸다. ‘물컵 반 잔’을 채우라는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일본 쪽도 사실상 끝났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일본 사람들의 반응이 일견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오염수는 다를 것이라고 반박도 못 하겠다. 혹여나 지금의 천일염 사태가 추후 일본으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냄비근성’처럼 비치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겠다며 전국에 온갖 선정적인 현수막을 달고 있는 민주당도 총선을 끝낸 후 이 문제를 언제까지 안고 갈지 의구심이 든다.
정말로 오염수 방류가 걱정되고 정부 대응이 못 미덥다면 실효성 떨어지는 오염수 방류 저지에 매달릴 게 아니라 방류 이후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시찰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방사능 검사가 필요한데 혹시 정부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게 진짜 정부를 압박하는 길이다.
정부·여당도 오염수 문제를 야당 공격 소재로 삼으며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이 태평양도서국(태도국)에 오염수 공동 대응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두고 “국제 망신”이라고 했는데, 태도국은 오염수에 민감한 곳이 맞다. 지난 3일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피지 내무부 장관은 일본 방위상 면전에서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왜 일본에 두지 않느냐.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
일본에 방류에 대한 책임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려면 이렇게 오염수에 민감한 곳들과 함께 대응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임은정 공주대 교수는 “오염수를 한·일 문제로 치부하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태도국은 당연하고 미국도 알래스카주나 하와이는 상대적으로 민감하다”며 “이런 곳들과 연대해 계속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지고, 누적된 피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도쿄전력 본인들도 아무 문제 없으리라 장담하지 못한다. 이를 증명할 몫은 일본에 있고, 그래서 우리 정부가 나서 ‘과학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게 일본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무조정실이 하는 오염수 일일브리핑은 조금 씁쓸하게 느껴진다.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한국 기자단을 대상으로 수차례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오염수 안전성을 설파했는데, 방류가 임박한 지금 일본 측의 설명회는 끊겼고 그 자리를 공교롭게 국조실이 대신한 모양새가 됐다. 벌써부터 일본의 책임감이 옅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김영선 정치부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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