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킬러 문항 배제, 사교육 줄이기에 한계

2023. 6. 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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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

최근 수능 초고난도 문항(킬러 문항) 논쟁으로 촉발된 정치권의 사교육 공방이 뜨겁다. 수능 킬러 문항이 난이도를 높여 사교육 수요를 유발해왔으므로 이를 없애면 난이도가 낮아져 사교육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과,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공교육 투자를 늘려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나,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고, 논쟁의 초점이 서로 다르다.

「 상위권 사교육 일시적 줄이나
변별력 약화로 내신 쪽에 불똥
교육과정 밖 출제 차단 힘써야

김지윤 기자

일반적으로 사교육은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공교육에서 제공하지 않는 예술·체육·취미·특기·적성 등을 위한 사교육, 공교육의 한계 또는 결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학습 결손 보충을 위한 사교육, 입시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선행학습 및 심화학습 등의 사교육이 그것이다.

공교육 기관이 제공하지 않는 교육에 대한 사교육은 불가피하지만, 공교육의 영역을 확대해나간다면 그 수요도 줄일 수 있다. 학습 결손 보충을 위한 사교육은 발본색원 대상으로 여겨진다. 학습 결손 발생의 원인이 수요자에게 있든, 공급자에게 있든 공교육에서 보충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사교육 수요를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에서 어느 정도의 학습 결손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기초학력 진단, 학업성취도 평가, 맞춤형 교육, 방과후교육 등과 같은 정책적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문제는 입시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사교육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학습 결손 사교육을 없앨 수 있다 해도 입시 경쟁 사교육을 없애기는 어렵다. 대학 서열이 존재하고, 사회적 선호에 차이가 있는 한 입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교육은 교육정책만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육정책에 의한 입시 사교육 감축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입시정책의 사전예고제 도입, 사교육 시장의 전문화, 정보통신 수단의 발달 등으로 효과가 점점 줄고 있다.

입시 사교육을 없애려면 대학 간 서열, 학벌주의, 학력 간 임금 차별 등을 해소해야 하나, 이런 것들은 교육정책만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대학 서열화를 깨지 않는 한 공교육을 정상화한다고 해서 입시 사교육을 없앨 수 없다. 공교육의 완벽한 정상화로 학습 결손 보충을 위한 사교육이 필요 없게 되면 오히려 입시 사교육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공교육 정상화 대책은 일시적 효과가 있었으나, 입시 경쟁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대학 서열을 철폐할 수 있다면 입시 경쟁도 줄일 수 있겠으나 대학 서열을 철폐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대학 서열 철폐가 근본적인 사교육 대책이라곤 하지만, 입시 경쟁을 취업 경쟁으로 바꾸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일자리 서열까지 철폐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 상위권 학생들의 사교육 수요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수능 변별력 약화로 사교육 수요를 내신으로 옮기는 풍선효과를 낼 수 있다. 학력고사는 교육 목표 달성 여부 확인이 핵심이지만, 수능과 같은 선발 고사는 변별력 확보가 필수다. 킬러 문항은 변별력 확보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용인되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쳐 사교육 카르텔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킬러 문항 배제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교육과정 안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하는 고난도 문항까지 배제하여 쉬운 수능을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1994년 수능시험제도가 도입된 후 여러 차례 물수능과 불수능을 반복했지만, 어느 것도 장기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 원론적인 주장이지만,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는 것이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길이다.

교육과정 내 출제가 교과서 내 출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 내 출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교육과정 내 출제를 전제한다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문항은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는 킬러 문항은 배제하되, 초점은 쉬운 수능 출제가 아니라 교육과정 밖의 출제를 차단하는 데 둬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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