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우주정거장에서 고추 재배…NASA가 우주농업에 힘 쏟는 이유

2023. 6. 2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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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1996년 겨울, 필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GSFC)를 찾았다. GSFC는 10개 NASA 연구센터의 하나로, 허블우주망원경 운영과 제임스웹우주망원경 제작을 맡았던 곳이다. 여의도 면적 두 배만한 벌판에, 사슴이 유유히 풀을 뜯는 이곳에서는 1만여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일반직 공무원과 계약직이 일한다. 테드 스테커 박사(1930~2017)는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연구실에 나왔다. NASA에는 55세 이상이 36%, 65~69세는 4%, 70세 넘는 직원은 2%를 차지한다. 84세에 은퇴한 사람도 있다. 세대 간 협력,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정년이 없다.

「 화성유인탐사, 5년치 식량 필요
생존하려면 직접 키워 먹어야
스마트팜·곤충농장 기술 중요
우주선 발사능력이 다는 아냐

화성탐사 21개월에 4.5t 식량 준비

국제 우주정거장(ISS) 우주비행사들이 2021년 11월 사상 처음으로 우주 실험실 안에서 수확한 고추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때 우리는 잠실체육관의 1.4배 크기인 청정실 유리창 너머로 그 이듬해 허블우주망원경에 실리게 될 분광기 ‘스티스’를 구경하는 혜택을 누렸다. 건물 복도마다 설치된 TV로는 마침 STS-80 우주왕복선 임무가 생중계됐다. 승무원들은 두 가지 천체관측 연구와 반도체 박막 성장실험, 재료공학 실험을 병행했다. NASA와 국립보건원(NIH)의 두 가지 의학 실험과 유전자 조작 토마토 성장실험이 이어졌다.

STS-80 승무원 다섯 사람이 17일 동안 먹은 음식은 대략 두 사람 무게다. 목적지가 화성이라면 얼마나 다를까. 네 사람이 아홉 달 걸려 화성에 갔다가 석 달 머문 뒤 지구로 오는 데 다시 아홉 달! 하루 1인분 식사량 1.8㎏을 곱하면 4.5t이 넘는다. 그렇지만 우주식은 대부분 열처리하거나 동결건조시켜, 1년 못 가 비타민 A·C·K 함량이 떨어진다. 만일을 위해 탐사선에는 최대 5년치까지 음식을 실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필수 영양소와 비타민을 섭취하려면 현지 재배밖에 답이 없다. NASA가 농법을 연구하는 이유다.

식물은 국제우주정거장(ISS)과 같은 미소(微小)중력에서는 작게, 동시에 느리게 자란다. 달에서는 지구 중력의 6분의 1, 화성에서는 3분의 1인데, 인류는 그런 곳에서 작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또 방사선을 쏘이면 DNA가 손상돼 발아와 성장, 번식에 장애가 나타난다. 화성의 흙에는 필수 미네랄이 포함돼 있지만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질소 분자는 부족하다. 인체에 독이 되는 과염소산염과 산화철도 골치다.

어쨌든 40피트 컨테이너에 2단으로 식물을 키우면 1.5인분의 비건 음식과 산소가 나온다. 이런 수직 농장은 일반 농장에 비해 생산성은 40~100배, 물 소비는 2~10%밖에 안 된다. 덤으로 공기정화에, 폐수와 배설물까지 처리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구에서는 물론 화성 정착 시대에 지속가능한 환경과 순환 경제의 해법으로 스마트 팜에 주목하는 이유다.

최근 영국과 호주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키울 수 있는 음식 재료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NASA가 권고한 영양 균형을 꼼꼼히 챙긴 우주 샐러드에는 콩과 양귀비씨·보리·땅콩·케일·고구마·해바라기씨를 넣었다.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흙 없이, 최소의 비료와 에너지로 크며 버릴 것도 적은 식재료다. 얼마 전 ISS에서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고추 재배에 성공했다. 고추는 비타민 C에 항균 효과 만점이며, 입맛 잃은 우주인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풀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과학자들은 뜻밖의 답을 발견했다. 성서에도 나오는 식용 곤충이다. 가축을 키우는 데 필요한 면적은 전체 농지의 70%, 육식으로 쓸 때 나오는 온실가스는 최대 19.6%, 메탄은 32%다. 방귀와 트림·분뇨·비료 생산과 산림 벌채, 사육과 운송, 가공할 때 나오는 가스를 모두 포함해서다.

우주농법은 지구 살리는 농법

반면에 곤충은 좁은 곳에서 최소량의 사료로 자라며 육류에 없는 식이섬유가 들어있다. 또 귀뚜라미에는 단백질·비타민B12·리보플라빈·비타민A가 농축됐다. 더구나 3~4주 만에 성체로 자라 교미하고 3~4주 지나면 1200~1500개의 알을 낳는다. 가축과 비교 불가다.

그렇다면 효율은? 곤충은 소의 2분의 1, 양의 4분의 1, 돼지와 닭의 2분의 1만큼 사료로 똑같은 양의 단백질을 제공한다. 포유류처럼 체온 유지에 쓸데없이 열량을 낭비하지 않고 주변에서 열을 뺏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소의 15분의 1만큼 좁은 공간에서 2000분의 1의 물만 먹고 같은 양의 단백질을 만든다. 온실가스는 1%밖에 내뿜지 않는다. 80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동시에 뜨거운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대안임이 틀림없다. M2M(Moon to Mars, 달에서 화성까지) 시대에 이보다 탁월한 해법이 있을까.

인도에서는 유통 과정 중에 채소와 과일의 40%를 버린다고 한다. 무덥고 습한 날씨 때문이다. 이 나라 엔지니어들은 우주에서 쓰는 열 차폐 기술로 이런 문제를 줄이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와 경상북도에서는 최근 스마트 팜과 곤충 농장에 사물인터넷(IoT)과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다. 화성에 가는 건, 지구를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지식의 지평을 확장해 미래 충격에 대비하는 일이다. 동시에 기후변화와 식량, 물 부족 같은 전 지구적 현안 해결을 모색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우주 분야에서 국가별 순위를 매긴 사이트가 몇 개 있다. 우주기술 수준과 예산, 위성 개수, 발사 능력과 유인 우주활동이 평가 항목이다. 이렇게 뽑은 분야별 10대 강국은 한국을 빼면 모두 우주정거장과 유인 탐사, 우주 농법에 투자한다. 그사이 우리는 발사 능력이 전부인 것처럼 포장돼, 그 등수가 국가 비전을 대체했다. 이해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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