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일본 때리기, 보수의 중국 찌르기 [장세정의 시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사고'를 쳤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지난 2월) 중국 스파이 풍선 기구가 격추됐을 때 시진핑이 언짢았던 이유는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때 독재자들은 당황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정치 존엄을 엄중하게 침해한 공개적인 도발”이라고 발끈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이번 발언의 부정적 영향을 되돌리는 조처를 해야 하고 모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뜻을 미국 측에 전달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쯤 되면 바이든이 슬쩍 한걸음 물러날 듯한데도 '확인 사살'까지 하면서 중국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진핑 독재자'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도 없었고, 중국에 대한 '사실'을 언급한 것은 잘못이 아니기에 그 발언이 미·중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취지로 말했다. 바이든은 중국의 앙숙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처음 국빈으로 초청해 백악관에서 융숭히 예우했다. 그 자리에서 인도의 종교 소수자 탄압 문제에 대해 "(미국과 인도는) 둘 다 민주주의 국가로 서로 존중한다"며 인도를 두둔해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또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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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오염수 놓고 반일 선동
과도한 중국 자극으로 논란 자초
반일·혐중 정서 이용 유혹 떨쳐야
」
지도자의 한마디는 파장이 커서 자칫 국익에 역행할 수도 있다. 지난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주석, 왕이 정치국원, 친강 외교부장을 만나 미·중 충돌 국면을 다소 진정시키는 듯했는데, 이런 외교 노력이 자칫 물거품 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외교를 봐도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의 부주의한 말실수가 잦다. 경직되고 편향된 외교 행보가 국익에 역행하는 사례들이 우려할 정도로 계속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보여준 '반일 몰이' 외교가 한 사례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어렵사리 미국을 움직여 아베 신조 총리와 극적으로 위안부 해법을 마련했지만 문 정부는 합의안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민주당 출신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했지만, 청와대가 막판에 퇴짜를 놓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고위 외교관의 전언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이던 2019년 조국 씨는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SNS에 올려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반일 정서를 손쉽게 자극해 국내 정치적으로 재미를 보려는 민주당의 행태는 야당이 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21년 4월 19일 당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대정부 질의에 답변하며 "세 가지 여건이 마련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는 적합성 절차에 따라 된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말했다. 세 가지 여건이란 일본 정부가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 정부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IAEA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 참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의 태도가 돌변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6일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및 수산물 수입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선동 정치가 우리 어민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세인지 의구심이 든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논란, 천안함과 세월호 괴담, 사드(THAAD) 전자파 참외 논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을 상대하는 보수 정부들의 태도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락가락한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북핵 해결 역할론에 지나치게 경도된 듯 천안문 성루에 올랐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급기야 속수무책으로 사드 보복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보면 한·일 관계 정상화와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 협력 추진이라는 큰 방향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양안 갈등이 고조된 국면에서 대통령의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천명은 사족(蛇足) 같아 보였다. 북핵 해결 노력은커녕 유엔에서 어깃장 놓는 중국에 대한 불만은 다른 방식으로 거론하면 될 일이다.
대사를 역임한 고위 외교관은 "야구처럼 국가 지도자의 '스윙'이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방망이를 허공에 휘두를 경우 실속도 못 챙기고 민망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는 당파를 초월해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종합 국력에 걸맞은 외교 행보를 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반일이나 혐중(嫌中) 여론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두 진영 모두 버려야 한다. 군사력 세계 6위, 경제력은 10위권이라지만 경솔함과 자만을 더욱 경계해야 마땅하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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