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퍼스펙티브] 소아진료 붕괴, 땜질 처방에 상황만 더 나빠졌다
소아청소년과 의료 대란
앞으로 언제든지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작년 말 소아청소년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 중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병원은 38%뿐이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인 수련병원조차 24시간 소아 응급환자를 볼 수 없거나 새 입원환자를 받을 수 없으니 작은 병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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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부 지원으로 중소병원 진료는 위축
1.5배 월급 줘야 소아과 의사 겨우 채용…몸값만 올리는 결과
당직 면제 내걸고 소아과 전문의 채용하기도…응급환자 피해
대학·중소병원이 협력해 환자 책임지고 진료하도록 유도해야
」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원인은 아니다. 소아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이 보는 환자 수는 지난 10년간 서서히 줄고 있다(그림 1). 10년 전보다 응급환자는 56%, 외래환자는 66%, 입원환자는 87%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많은 환자를 보고 있고, 국민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의사들이 같은 환자를 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더 많아져야 한다.
전공의뿐 아니라 전문의도 당직 서야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줄어드는데 정작 응급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하고 입원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몇 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4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평균은 40%에 불과하다. 올해는 25%까지 낮아졌다. 밤에 당직하면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보는 전공의가 부족하니 대학병원이 응급실 진료를 축소하고 새로 입원환자를 받지 못하는 대학병원이 많아진 것이다. 소아 진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전문의도 당직을 서는 선진국과 달리 전공의에게 ‘당직 독박’을 씌워서 지탱해 온 후진적 병원 운영체계에 있다. 따라서 소아 진료체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큰 병원이 전문의를 더 고용해 당직을 서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지난 2월 정부가 내놓은 소아진료 개선 대책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먼저 소아 진료의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없다. 위기의 근원에 대한 진단 없으니 기형적 의료체계를 고치기 위한 제도 개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손쉽게 해결하려는 땜질식 처방만 난무한다. 어린이 공공전문센터 혹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늘리기처럼 기존 정부 정책을 재활용한 것이거나, 소아 건강관리 시범사업처럼 언제 본 사업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한가한 생색내기 대책이거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같은 추상적인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책이라도 단기적으로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소아진료체계의 생태계를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 정책이 대형병원 쏠림 부추겨
첫째,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의 정부 대책은 소아 진료체계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들의 진료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신할 소아과 전문의를 채용하도록 정부가 지원금을 주니 중소병원 소아과 의사들이 대학병원으로 옮겨 가고 있다. 오랫동안 경증환자만 보던 동네 의원 소아과 의사들은 대학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소병원의 소아과 진료 기능이 위축되고 그 결과 경증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다시 몰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종합병원과 병·의원의 소아 환자 비중은 감소한 반면 상급종합병원 환자는 늘고 있다(그림 2). 정부 대책은 대형병원 쏠림으로 점점 약화되어 가는 중소병원들의 진료 기능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소아과 전문병원으로 역할을 키워 온 소아아동병원들에서 의사들이 빠져나가면 우리나라 소아진료체계의 허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
둘째, 정부 대책은 소아과 의사를 포함한 대학병원 의사의 몸값을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기존 교수 월급의 1.5배를 줘야 겨우 소아과 의사를 채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이 새로 채용한 전문의가 교수가 되는 경로를 만들지 않고 채용하다 보니 그 정도 월급이 아니면 올 사람이 없는 것이다.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중소병원도 기존보다 급여를 더 올려줘야 대학병원으로 옮겨 간 의사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소아과 의사의 몸값이 올라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는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와 다른 과목 교수의 월급도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소아 환자를 적게 보는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의사가 옮겨 오도록 하는 정교한 정책 없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방식을 쓰니 뜻하지 않게 연쇄적인 의사 몸값을 올리고 있다. 결국 모든 병원 의사의 월급이 기존보다 1.5배 이상 올라가거나 기존 대학교수들의 거부감으로 전문의가 새로 충원되지 못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밖에 없을 것 같다.
정부의 후진적 지원 탓에 부작용 우려
셋째, 대학병원이 소아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잘 진료하는 데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소아과 의사를 채용하면 돈을 주는 원시적인 정책을 쓰니, 의사는 늘었는데 소아 응급환자는 여전히 진료를 못 받고 입원을 못 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대책으로 소아과 의사가 귀한 몸이 된 까닭에 일부 병원에서는 당직을 안 서는 조건으로 입원환자를 전담할 전문의를 채용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의사 수는 늘었지만, 밤에는 의사가 없어 소아과 응급환자는 계속해서 입원을 못 하게 된다. 정부의 후진적 지원 방식 탓에 돈을 쓰면서도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지역 단위로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이 협력해서 자기 지역의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병원과 지역 소아과 병의원이 협력해서 대학병원은 중환자를 보고, 중소병원은 경증과 중등증 환자를 잘 나눠보도록 하면 불필요한 진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역 내 병원들이 협력하면 소아과 의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다. 어디에 소아과 의사가 더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과 주치의를 도입하면 아이들 건강도 잘 관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들이 믿을만한 의사가 없어 우선 큰 병원을 찾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실손보험·비급여 진료 방치 말아야
둘째, 투입이 아니라 성과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의사를 채용할 때는 절반만 지원하고, 응급환자와 입원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때 나머지 절반과 잘하는 지역에 대한 보너스를 얹어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를 채용했는데 여전히 응급환자가 치료를 못 받거나 입원을 못 하는 일이 없어진다.
셋째, 소아과 진료 위기를 포함해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붕괴시키고 있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격하게 낮아진 이유는 도수치료와 미용주사, 인공수정체 같은 비급여 진료가 급증하면서 다른 과목 의사들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 큰 수입 격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7년 평균 대비 3000만원 낮았던 소아과 개원의 수입은 2019년 6400만원으로 벌어졌고, 작년에는 1억원가량 격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소아과 개원의 수입은 근로자 평균 임금의 5배로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이 같은 비급여 진료 때문에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치료해야 할 대학병원 의사들이 개원가로 빠져나가고 있고, 그로 인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의사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개원의 수입은 대학교수처럼 월급을 받는 의사에 비해 수입이 1.8배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 3). 지난 정부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의 문제를 방치한 결과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들이 의학적 근거가 없는 도수치료와 미용주사를 하는 동네 의원으로 빠져나가게 하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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