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전업자녀
‘취안즈얼뉘(全職兒女)’, 의역하면 ‘전업자녀’라는 뜻의 중국 신조어다. 전업주부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가정이 잘 굴러가도록 살림을 도맡아 한다. 요리와 청소는 기본, 대리기사, 여행 계획 짜기, 외식 참여 등도 이들의 주요 업무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5월 기준 20.8%)을 겪고 있는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된 유행어지만,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저성장 사회에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자녀의 등장은 이제 낯설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느라 많은 청년이 장기간 진공 상태로 보내는 한국에서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업자녀가 되려면 우선 경제력이 있는 부모의 그늘이 필요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이 소개한 사례에서 전업 자녀가 매달 받는 돈은 4000~5500위안(73만~100만원) 정도다.
액수만 보면 그리 많진 않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살면서 숙식이 해결되는 장점이 있다. 또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팍팍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한다는 면에서 놀면서 부모의 노후 자산을 축내는 ‘캥거루족’ ‘부메랑 세대’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가족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효도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모는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식을 키웠을 테니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을 보면 이런 계약 관계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와 자녀의 교류가 점점 뜸해지는 경우를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인들 사이에서 “효도 받으려면 끝까지 상속하지 말라”는 말은 농담이 아닌 상식으로 통하는 요즘이 아닌가.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물려줄 게 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한국 65세 노인 인구 중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이하(상대빈곤선)인 비율이 37.6%(2021년)에 달한다. 노인 10명 중 4명 정도가 가난한 말년을 보낸다는 뜻이다.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당 46.6명, 2019년)과 함께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월급을 주면서 전업 아들, 전업 딸을 둘 수 있다면 그래도 성공한 노년이 아닐까.
전영선 K엔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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