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인류세
21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사용된 인류세(Anthropocene·人類世)라는 용어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구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 지질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인류의 환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 고대 그리스의 예를 들면, 식민지 개척을 위한 군함 및 배 건조에 들어가는 목재만 해도 엄청났다. 100년마다 자그마치 5000만 헥타르(현 그리스 땅의 3배 면적)의 산림이 필요했다. 도시의 오염 문제도 심상치 않았다.
환경생태학(Ecology)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오이코스(가정 또는 집)와 로고스(배움)가 결합한 용어로, 인구 집단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도 그 핵심 요소가 바로 생태학적인 환경 문제다. 플라톤이 『국가(Politeia)』에서 논하는 ‘건강한 도시’와 ‘열이 난 도시’, 이 두 개의 가상 도시국가의 차이점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열이 난 도시는 사치에 따른 자원 고갈이 심각하고, 사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이 빈번하다. 반면에 건강한 도시는 모든 일에 중용과 적도(適度)를 따르며, 알맞은 인구를 유지하고 협조하는 사회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자연은 신들의 영역이기에 경외심과 보호의 대상이었다. 환경정책이 철저했기에 그들은 서양 최초의 환경보호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리브 나무는 가구당 1년에 두 그루 이상 베지 못하게 했고, 늑대 사냥도 새끼는 죽이지 못하게 했다. 낙농장, 무두질 공장과 금속제련소 등 오염 가능성이 큰 시설들은 바람의 방향과 거리 등을 고려해 세웠다.
핵폐기물 오염수 처리 문제와 관련해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인류세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라 말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용의 덕목을 중시한 고대인에게서 그 근원적인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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