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키시와 히어로즈, 아름다운 작별의 모범

이준목 2023. 6.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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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역투하는 키움 선발 요키시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키움의 경기. 1회초 키움 선발투수 요키시가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한국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용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돈을 주고 고용한 병사라는 표현처럼, 같은 집단으로서 소속감이나 동질감보다는 금전적으로 연결된 임시 계약관계라는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라고 해서 모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용병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소속팀과 팬들에게 국내 선수 못지 않은 사랑을 받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하며 프랜차이즈스타-레전드 대접을 받거나, 구단과 동료들에게 가족처럼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충성심을 발휘하는 외국인 선수도 많다.

에릭 요키시 역시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구단과 팬들에게는 단지 '외국인 선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선수다. 2019년 키움 유니폼을 입으며 한국야구와 인연을 맺은 좌완 요키시는 올해까지 5시즌 동안 키움에서만 활약하면서 통산 130경기에 선발 등판해 56승 36패 평균자책점 2.85의 출중한 성격을 남기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사실 요키시는 한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크게 기대받던 외국인 선수는 아니었다. 첫 영입 당시 요키시의 몸값은 총액 50만 달러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낮았다. 미국 기준에서는 느린 구속과 압도적이지 못한 구위로 인하여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메이저리그 경력은 지난 2014년 시카고 컵스에서 뛴 4경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키움은 요키시의 정교한 제구력과 땅볼유도능력이 KBO리그에서는 충분히 통한다고 판단했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요키시는 첫해부터 키움의 주축 선발로 자리잡으며 지난 2022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2020년에는 평균자책점 2.14로 1위를 차지했고, 2021년에는 16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다.이 기간 요키시는 KBO리그 전체 이닝 2위(707.2이닝)을 다승 3위(51승), 탈삼진 3위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2.71로 같은 기간 활약한 KBO리그 전체 선발투수를 통틀어 1위였다. 요키시의 놀라운 성공은 KBO리그 외국인 선수 역대 최고의 가성비 계약으로 불리우며, '효키시(효자 외인+요키시)', '요혜자(요키시+김혜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어느덧 KBO리그의 장수 외국인 선수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요키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의의 부상이었다. 요키시는 지난 6월 6일 LG전을 마친 뒤 왼쪽 내전근 부상으로 약 6주 이상 장기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가을야구 진출을 노리는 키움은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 끝에 외국인 선수를 교체를 결정하며 요키시와의 작별을 선택했다. 올 시즌 요키시의 성적은 12경기 등판 5승 3패 평균자책 4.39였다. 대체 외국인 투수로는 좌완 이안 맥키니가 영입됐다.

보통 시즌 중 교체되는 외국인 선수는 좋은 모양새로 이별하기가 쉽지 않다. 성적 부진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구단과 갈등을 빚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요키시와 키움은 달랐다. 요키시는 오히려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해서 미안하다. 구단의 결정을 존중한다. 지난 5년 동안 환상적인 한국 생활을 보내게 해준 구단과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키움 구단 역시 구단에 헌신한 요키시를 위하여 성대한 이별식을 준비하며 예우를 다했다.

지난 6월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경기는 요키시의 작별행사를 겸한 무대이기도 했다. 요키시는 이날 사전 신청한 100명의 팬과 만나 팬사인회를 열었고, 경기 시작을 앞두고 그라운드에서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가족들과 함께 등장한 요키시에게 키움은 전광판을 통해 지난 5년간의 활약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준비했고, 이어 고형욱 단장과 홍원기 감독, 이정후가 등장하여 요키시를 위한 감사패와 꽃다발을 선물했다. 요키시는 내내 환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키움 선수단 모두와 일일이 포옹하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요키시는 행사 이후 가족과 함께 관람석에 앉아 이제는 팬으로 키움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다. 키움은 팽팽한 투수전 끝에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의 호투를 앞세워 두산에 4-2로 승리하며 요키시의 송별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경기 내내 열렬히 응원하던 요키시는 키움의 승리가 확정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에 요키시는 1루 응원단상으로 이동해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정후와도 다시 한번 뜨겁게 포옹했다. 요키시는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지난 5년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팬들이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시는지 체감을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팬들에게 감사하다. 많은 외국인 투수들이 이렇게 떠나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해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어 요키시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팀 승리에 누구보다 공헌한 선수, KBO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선수로 기억된다면 영광일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은 KBO에서 보낸 5년을 정말 즐겼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요키시와 키움의 이별은 KBO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아름다운 마무리의 모범사례라고 할 만했다. 철저한 승부와 계산이 난무하는 비즈니스의 세계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배려와 품격이 공존하는 낭만야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만큼 요키시가 그동안 키움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함축해서 보여준 하루였다.

요키시가 부상에서 회복한다면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때도 소속팀은 여전히 키움일까. 미국으로 돌아가는 요키시는 "지금 당장은 어떤 계획도 없다. 부상 회복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끼면서 한편으로 "'절대'라는 말은 없기에 미래를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 요키시와 한국야구의 인연은 아직 'Good Bye'가 아니라 'So Long(다시 만나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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