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라'는 누구의 것인가?

이학후 2023. 6. 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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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수라>

[이학후 기자]

▲ <수라> 영화 포스터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새만금 간척사업'을 기억하는가? 1987년 당시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시작해 1991년 착공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와 전북 군산시 비응도동을 연결하는 33.9km 길이의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축조해 총면적이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간척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다. 세계 최대 갯벌이자 주요 습지 생태계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환경·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범국민적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은 어민들도 격렬히 저항했다. 

2006년 4월 대법원이 새만금 간척사업을 강행하라는 판결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녔던 갯벌을 파괴하는 새만금 방조제 벽이 바다를 가로막게 되었고 2만 명이 넘는 어민들이 일터를 잃었다. 이후 대중의 기억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은 잊혔다.

동물원에 갇힌 호랑의 삶에 관한 <작별>(2001), 백두산 유역 야생동물들의 현실을 다룬 <침묵의 숲>(2004), 야생동물이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을 조사한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우리나라의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담은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등 산업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며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 황윤 감독도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말미암아 갯벌의 무수한 생명체들이 죽어가는 현실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과 자신과 가깝게 지내던 어민의 사고사로 인해 충격을 받고 갯벌을 떠났다. 

의도적으로 새만금을 멀리하던 황윤 감독은 2015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을 따라간 수라 갯벌에서 간척사업으로 모두 사라진 줄 알았던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 15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물고기를 찾아 먹는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황윤 감독은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고 밝힌다.

"다 파괴됐다고 생각한 곳에 희망이 있었다. 부정적인 그림만 그려오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습관적으로 들고 다니던 카메라를 꺼냈다. 이건 나의 다음 작품이 되겠다고 직감했다."
 
▲ <수라>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군산, 김제, 부안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갯벌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무참히 파괴되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이 바로 군산의 '수라 갯벌'이다. 수라 갯벌엔 본래 이름이 없다가 갯벌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의 '수라'란 이름을 붙인 후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다. 

현재 수라 갯벌에는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등 법정 보호종 40여 종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서식 중이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흰발농게가 10년 넘게 수라 갯벌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보면서도 믿기질 않는다. 

황윤 감독은 수라 갯벌과 멸종위기 생명체들,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지난 7년의 보고서인 <수라>엔 갯벌에 사는 동식물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 그런 갯벌을 지키고자 기록하는 행위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황윤 감독은 < EBS 뉴스 >와 가진 인터뷰에서 "(갯벌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부는 '수라는 다 죽었다', '수라는 육지화돼서 더 이상 보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정 보호종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생명의 터전인지를 보여주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 <수라>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황윤 감독은 관객들에게 "갯벌이 아름답다"는 걸 전하기 위해 시청각적인 구현에 노력을 기울였다. 스크린에서 펼쳐질 갯벌의 풍광을 위해 망원렌즈부터 드론, 고속 촬영, 타임랩스 등 많은 장비와 기술력을 동원했다. 

전주 MBC 자연 다큐멘터리 <지리산 반달곰> 4부작, KBS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갯벌' 3부작 중 <신의 캠퍼스, 신안 갯벌> 등 국내 최고의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촬영감독으로 명성이 높은 김정근 촬영감독과 <어머니>(2011)를 비롯하여 <그날, 바다>(2018),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 등 다양한 독립 다큐멘터리 촬영을 맡았던 신임호 촬영감독이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극장에서 안 봤다면 후회했을 정도로 화면이 멋지다. 특히 러시아 툰드라에서 동아시아의 수라갯벌로, 다시 호주와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도요새들의 움직임은 실로 황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새만금 간척사업이란 국가폭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초엔 간척지를 식량을 생산하는 농경지로 쓴다고 했다가 산업단지 부지, 태양광 발전단지 등으로 계속 목적을 바꾸며 공사비만 퍼붓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는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수립·고시했다. 총 8077억 원을 투입하여 현재 일부 바닷물이 들어와 유일하게 남은 수라 갯벌을 메우고 활주로, 여객·화물터미널, 계류장 등을 2028년까지 건설해 2029년에 문을 열 계획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환경·시민단체들은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갯벌에 살아가는 법정 보호종을 조사하여 갯벌의 생명력과 아름다움,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새만금 국제공항을 추진하는 쪽에선 수라 갯벌이 이미 갯벌의 기능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수라 갯벌을 지키려는 쪽에선 수라 갯벌이 살아있다고 반박한다. <수라>는 수라 갯벌이 숨을 쉰다는 증거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수라>는 우리에게 묻는다. 수라 갯벌이 누구의 영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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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내레이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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