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전쟁장면? 이 영화의 핵심은 '두 남자'
[양형석 기자]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시민들은 이른 아침 위급재난문자 한 통을 받았다.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됐으니 대피를 준비하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우선 대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7년 위급재난문자가 생긴 이후 각 지역에서 몇 차례 위급재난문자가 수신되는 일이 있었지만 이처럼 휴대전화를 소유한 서울시민 전체에게 위급재난문자가 발송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행정안전부는 7시 3분 서울시의 경계경보가 오발령이었다는 위급재난문자를 발송했고 서울시 역시 7시 25분 경계경보가 해제됐다는 안전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입장발표를 통해 시민들에게 혼란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안전에 대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며 "이런 문제는 과잉이라고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만과 비판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에 이어 곧바로 한국영화 역대 두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
ⓒ (주)쇼박스, 강제규 필름 |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전쟁 영화들
한국전쟁은 지난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 넘게 한반도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지금도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다. 하지만 어느덧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의 긴 세월이 흘렀고 대중 예술계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영화도 예외가 아닌데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2016년에 개봉해 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전황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작품이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테이큰>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 역을 맡아 제작 당시부터 크게 화제가 됐던 <인천상륙작전>은 높은 흥행성적에 비해 잘 만든 대중영화라는 평과 유치한 반공영화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던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0년 11월 전쟁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특히 동막골에서 지내게 된 한국군과 북한군, 연합군이 마을사람들에 동화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마지막에는 마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공동 연합작전을 펼치며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1991년에 개봉한 이혜숙과 김보연 주연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집필했던 안정효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미군들이 들어온 시골의 작은 마을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았다는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대종상 주요 부문 시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2018년에 개봉한 도경수, 박혜수 주연의 <스윙키즈>는 146만 관객을 동원하며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을 만들며 '흥행불패'로 승승장구하던 강형철 감독에게 첫 흥행실패의 시련을 안긴 작품이다. 하지만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결성된 댄스단의 이야기를 담은 <스윙키즈>는 아쉬운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N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 9.05점, D포털사이트 8.7점을 받으며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둘도 없는 우애를 자랑하던 진태(왼쪽)와 진석 형제는 전쟁을 겪으면서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
ⓒ (주)쇼박스, 강제규필름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주목 받은 강제규 감독은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게임의 법칙> 등의 각본을 통해 작가로 먼저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1996년 한석규, 심혜진, 신현준 주연의 장편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로 서울 45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1999년 두 번째 영화 <쉬리>로 전국 58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새로 썼다.
강제규 감독은 <쉬리> 이후 약 4년의 제작 기간 끝에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를 선보였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한 2004년 2월은 이미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의 흥행열풍을 이어 받으며 무려 1174만 관객을 동원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19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대 2월 개봉작 중 최고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전쟁드라마의 바이블'이 된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이미 세상에 공개된 상태였다. 이 같은 전쟁영화, 드라마의 명작들과 비교하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쟁 장면은 다소 어설픈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감나고 치밀한 전쟁 장면보다는 전쟁의 비극에 던져진 형제의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1100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는 데 성공했다.
사실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성별의 관객들만 공략해서는 불가능하다.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게 신기할 정도로 잔인한 묘사가 많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성관객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당대 최고의 꽃미남 배우 장동건과 원빈의 형제 연기 덕분이었다. 당시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관람할 가치는 충분했다는 여성관객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
<친구>이후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와 <해안선>을 통해 주연으로 입지를 다진 장동건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강제징집을 당한 후 점점 전쟁의 광기에 휩싸이다가 북한 인민군으로 전향하는 이진태 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킬러들의 수다> 이후 두 번째 영화 출연이었던 원빈도 변해가는 형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이진석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하며 영화계에서 확실히 입지를 다졌다.
▲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청년단장 역으로 특별출연한 김수로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 (주)쇼박스, 강제규필름 |
지난 2005년 만 24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이은주는 한창 많은 작품에 출연하던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와 결혼을 약속한 영신 역으로 출연했다. 보리쌀을 얻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살림꾼으로 진태-진석 형제의 입대 후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전쟁 직전 보도연맹에 가입했었다는 이유로 청년단에 잡혀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강제규 감독의 중앙대 후배이면서도 전작 <쉬리>에 출연하지 못했던 공형진은 <파이란>으로 인지도를 쌓은 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당당히 고영만 역을 따냈다. <실미도>의 임원희와 비슷한 말 많은 분위기 메이커 고영만은 입대 전 결혼해 아이를 낳은 가장이다. 하지만 평양 전투 중 인민군 대좌(최민식 분)를 생포하기 위해 나선 진태를 돕다가 인민군의 총에 맞고 사망한다. 영만의 죽음은 진석이 진태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주연급 배우들도 화려하지만 우정출연 라인업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그중 가장 유명한 배우는 <파이란>의 이강재, <올드보이>의 오대수로 전성기를 달리던 최민식이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청년단장 역의 김수로였다. <화산고> <달마야 놀자> <재밌는 영화> 등을 통해 주로 코믹한 매력을 보여주던 김수로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영신을 총으로 쏴 죽이는 극악무도한 연기를 선보였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했던 2004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영화인은 장동건도 원빈도 최민식도 아닌 정두홍 무술감독이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정두홍 감독이 참여한 영화와 참여하지 않은 영화'로 나뉘던 시절이었고 정두홍 감독은 '대한민국 1, 2호 천만 영화'였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무술연출을 모두 맡았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최민식의 부관 역할로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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