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좋은 엄마 될래요"… 국내 첫 여성 마약중독재활센터 '새빛터'
입소자, 빠른 재활 의지로 개소 전부터 외래 참여
오전 7시 기상, 'QT'와 재활 교육 등 빡빡한 일정
"하루 빨리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개소를 기다리는 동안 외래로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이제라도 입소해서 다행이에요"
국내 첫 여성 마약중독재활치유센터 '새빛터'가 지난 9일 경기 남양주시에 개소했다. 두 아이 엄마이기도 한 입소자 이모씨(24·여)는 위와 같이 각오를 다졌다. 새빛터는 민간 남성 마약중독재활치유센터인 경기도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가 재활 치료를 받을 곳 없는 여성 마약 중독자의 치료 재활을 위해 마련한 시설이다.
지난 22일 기자가 찾은 새빛터의 하루는 아침 일찍 시작됐다. 오전 7시 기상 후 샤워와 아침식사를 마친 이들은 QT 예배(기독교 성서 묵상 시간)로 재활 의지를 다졌다. 예배 후 짧은 청소 시간을 가진 이들은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경기도다르크로 이동했다. 여성 입소자 규모가 작아 아직 정규 재활 프로그램은 합동으로 진행된다.
경기도다르크에 도착하자 남자 입소자들과 함께 "좋은 아침이에요"란 인사를 주고 받았다. 먼저 재활 과정을 겪고 있는 최모씨(34·남)는 "다들 입소 초반에 도망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돌아온 것'에 환영하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고 받는 아침 인사도 치료의 한 과정이다.
다르크 미팅은 입소자들이 단약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다. 매일 오전 이뤄지며, 입소자들이 돌아가며 사회를 본다. 대화 주제는 사회자가 정한다. 다르크 미팅엔 규칙이 있다. 발언할 땐 항상 "중독자 '성(씨)'입니다"라고 밝혀야 한다. 이후 미팅 참여자들이 '성'을 합창한 후 말을 시작한다. 발언 후엔 참여자들이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회복의 시작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센터 교육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책하는 분위기 속 참회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입소자들은 덤덤하면서도 밝은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표현은 '식구'였다. 입소자들은 서로를 식구라 지칭했다. 처음엔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대화 속 그간의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고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로서로 식구로서 의지하며 단약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모양새였다.
저음 일색 발언이 이어지던 중 "중독자 '백' 입니다"라는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용기를 낸 새빛터 입소자 백모씨(26·여)의 목소리였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재활이) 버틸만하다. 모르고 있던 제 모습을 많이 느꼈고, 고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이후에도 각자의 걱정과 개인사 등을 털어놓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내 다 같이 손을 잡고 "우리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 외친 후 오전 다르크 미팅이 마무리됐다.
정오가 되자 입소자들은 점심식사에 나섰다. 이어진 짧은 휴식시간 후 오후 2시부터는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의 강의가 시작됐다. 김 교수는 마약이 떠오를 때의 감정 관리 방법 등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강의를 이어갔다. 김 교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닌 '회복자'가 되기를 당부했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회복자가 돼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에 흔들리는 감정과 본성이 아닌 이성으로 삶을 살기를 강조했다.
오후 강의를 끝으로 정규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입소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책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다음날 프로그램을 대비해 준비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빡빡한 일과를 마친 후 기자와 대면한 입소자들은 재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두 아이를 가진 입소자 이모씨(24·여)는 좋은 엄마가 되고자 새빛터에 입소했다고 속마음을 꺼냈다. 마약을 끊기 위해 6번이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매번 갈망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약에 취하지 않았을 때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160㎝ 중반에 달하는 키에 몸무게가 38㎏까지 빠지는 등 몸 상태는 점점 악화했다. 그는 결국 본인의 의지로 센터를 찾았다.
마약 투약 계기도 조심스레 밝혔다. 육아하며 의지하게 된 또 다른 아이 엄마 A씨의 남편이 마약 딜러였다. A씨의 남편은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단톡방에 마약 투약 동영상 등을 올리며 마약 구매를 유도했다. 당초 이씨는 A씨에게 욕설을 내뱉은 후 방을 나왔다. 하지만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에 이르자 '마약을 먹고 죽으면 쉽게 죽을 수 있겠다'란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A씨에게 연락을 해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됐다.
이씨는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보게 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미안할 뿐이라 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몸이 아파 치료받는 중이라고만 알고 있다. 이씨는 "다섯살인 첫째가 말을 잘하는데 왜 자기랑 있어 주지 않느냐며 매번 아쉬움을 표한다. 두살 어린 둘째도 말을 떼기 시작해 '엄마 보고 싶어'라고 말한다"며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어머니 말씀으론 아이들이 만날 땐 밝은 척하다가도 헤어지면 눈물을 흘린다고 하더라.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재활에 성공해 꼭 좋은 엄마가 돼야겠다고 매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입소자들의 하루를 함께하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일정이 빡빡하고 생활 규칙이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군대와 같았다. 외출과 외부와의 연락도 철저히 관리된다. 새빛터 입소자들은 첫 한 달간 휴대전화를 압수당한다. '생활 습관을 바꿔야 마약을 끊을 수 있다'는 센터의 방침 때문이다. 새빛터를 개소한 임상현 센터장 역시 17세에 마약을 접한 후 40년간 마약 중독자였던 경험이 있다. 엄격한 생활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마약 극복의 방책이다.
실제로 입소자들은 병원 입원 치료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엄격한 생활 규칙을 꼽았다. 이씨는 "6번이나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병원은 약과 밥을 줄 뿐 생활을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 입원한 중독자들끼리 몰래 마약을 반입해 단체로 흡입하기도 할 정도다"며 "나도 병원에서 들은 마약 종류와 판매상 관련 정보가 밖에서 알게 된 것보다 많았다"고 했다.
그간 국내서 여성 마약사범들이 해독 치료 후 재활할 곳은 전무했다. 첫 여성 마약중독재활치유센터인 새빛터는 이달 9일에야 개소했다. 마약에서 벗어나고픈 여성들은 주로 알코올재활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알코올재활센터는 알코올 중독자 대상 프로그램과 시설만이 구비돼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맹점이 있다.
이런 실정에 입소자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마약중독재활치유센터의 추가 개소 필요성을 말했다. 최씨는 "교도소에서 복역도 했고, 병원에도 있어 봤지만, 실질적인 재활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판매상으로 변한다던가, 새로운 마약을 배우는 계기가 된 이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마약은 중독성이 높기 때문에 재활이 되지 않으면 또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마약류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마약사범은 1만6153명에 달한다. 이들 중 또다시 마약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사람은 5916명으로 전체 마약사범의 36.6%에 이른다. 마약사범 10명 중 4명 가량이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꼴이다.
임 센터장은 입소를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재정적 문제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지원 기준 완화가 시급하다고 하소연했다. 새빛터의 총 수용인원은 4명으로, 현재 2명이 입소한 상태다. 십수 명의 중독자가 대기 중이지만, 한정된 수용인원 때문에 '확고한 재활 의지'를 가진 이를 선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총 수용인원 15인 규모의 남성 센터인 경기도 다르크는 2019년 남양주시 퇴계원에서 개소한 후 4년여만에 시설등록 기준을 맞추기 위해 호평동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재정 지원은 요원한 상태다. 여전히 정신재활시설 설치 종사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정신재활시설은 시설의 장과 조리원, 정신건강전문요원, 재활활동요원, 재활활동보조원이 각 1명씩 종사해야 한다. 중독자 80명 정도가 입소해, 50명 정도 재활 성공한 다르크도 상주관리인 임 센터장을 비롯 1급 사회복지사 1명과 기존에 입소했었던 봉사자 2명 등이 전부다.
임 센터장은 "나와 아내 모두 무급으로 일하며, 한 사람당 50만원을 받고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을 운영한다"며 "강의를 나와주시는 교수님들과 강사님들도 모두 자원봉사 개념으로 와주시지만, 직원 5명이 있어야 시설 인정이 되는데 그럼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해도 한 달에 최소 1000만원이다. 1년의 평가 기간 동안 한 달에 1000만원씩 적자를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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