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진폐증 산재급여 기준 직장, 발병 원인 마지막 근무지"

1심 "원인 제공 마지막 사업장"→ 2심 "마지막 직장 기준"
대법 "발병 영향 사업장 중 진단일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증 진단을 받은 경우 산재보험급여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 산정을 위한 퇴직일은 직업병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 중 진단일에서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로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진폐증 진단을 받은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보험급여 차액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1979년부터 약 4년6개월 동안 광업소에서 채탄보조공으로 근무하고 약 8년6개월이 지난 후인 1992년 10월부터 3일간 터널 신설 공사 현장에서 착암공으로 근무하다가 업무상 사고로 퇴직한 후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B씨도 16년 5개월 동안 탄광에서 일한 뒤 1992년 8월부터 16일간 터널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일을 그만두고 1997년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진폐증에 걸린 근로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보험급여의 액수가 정해진다.

공단은 두 사람의 마지막으로 근무한 직장의 재직 기간이 짧아 진폐증 발병의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두 사람이 오래 일한 직장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 보험급여를 지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 직장을 기준으로 보험 급여를 달라고 신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1심은 터널 신설 공사 현장에서 근무한 기간이 너무 짧아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와 원고들의 진폐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여러 사업장을 전전하다가 마지막 사업장을 퇴직한 후 직업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산정함에 있어 근로기준법상 평균임금 산정 시 고려되는 퇴직일의 기준이 되는 사업장은 직업병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 즉 업무와 직업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 중 마지막 사업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마지막 직장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진폐증 확진을 받은 경우, 확진 받은 때부터 가장 근접한 사업소에서 받은 임금이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많지 않고 생활임금을 사실대로 산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평균임금이라면 이를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직업병의 발병·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 중, 직업병 진단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이라며 "‘진단 직전에 근무한 사업장이 어디인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고, 이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