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 묶인 안중근…韓 사진 수집한 대만 컬렉터 "운명이었다"

이보람 2023. 6.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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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5일 조선의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 전에 남긴 사진. ⓒ Hsu Chung Mao Studio.


사진 속에는 쇠사슬로 묶였지만 어깨를 편 채 결연한 눈빛으로 꼿꼿이 앞을 응시하는 한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하루 전인 1910년 3월 25일 촬영된 사진이다.

이 사진을 세상에 알린 이는 대만의 사진 수집가이자 칼럼니스트 쉬충마오(徐宗懋). 그가 1910~1945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모아 펴낸 『희귀사진집』이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서울국제도서전’에 소개됐다. 사진집에는 안중근 의사 외에도 임시정부 당시의 김구 선생,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담겨있다. 또 치열한 항일 투쟁 속에서 역사 속으로 스러져 간 평범한 이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모두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말 그대로 ‘희귀’사진들이다.

『희귀 사진집』.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Hsu Chung Mao Studio.


귀한 사료(史料)인 사진집은 도서전 현장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9만원(정가 18만원)의 고가 도서임에도 준비한 수량 40부가 금세 ‘완판’됐다. 책을 구매하지 못한 관람객들이 부스를 장식한 한양도성 사진이 담긴 포스터라도 판매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다 대만인이 일제감정기 한국인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21일 이메일를 통해 쉬충마오에게 직접 들었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충칭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1947년 4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당시 모습.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1939년 조선의용대의 여군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쉬충마오는 무엇보다 “이 책을 만든 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고 단언했다. 1979년 첫 해외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 한국과의 강한 인연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인의 애국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내 인생에서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거라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강렬한 첫 인상이 사진 수집으로 이어진 건 1997년이었다. 그때 처음 한국과 관련한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사진집의 서문을 통해서도 그 연유를 설명했다. ‘한국 근대사 재구성의 노력’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그는 “지난 25년간 중국의 근대사를 담은 다수의 역사 화보집을 출간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근대사에 관련된 자료들도 필수적으로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대외침략 과정에서 대만이 첫 번째 해외 식민지였고 조선은 두 번째 식민지로, 양자는 모두 일본의 대 중국 침략전쟁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의 유사한 역사적 궤적이 자연스레 한국 사진 수집으로 자신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도 일본의 탄압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망명해 용감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자주 본다”고 했다. “중국인들도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강한 연민을 느낀다”는 것이다.

1905년 서울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1905년 한국의 항일운동가들을 처형하는 일본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1910년대 한국의 항일운동가를 참수하는 일본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하지만 자료 수집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희귀 사진을 소장하기 위한 재원이었다. 주로 사재를 털어 자료를 확보하는데, 늘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오래된 사진을 수집하는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업가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다보니 큰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1905년 무렵 한국의 매혹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담은 앨범을 본 적이 있는데, 2만 달러(약 2600만원)였다. 수입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이었지만 인생에 한 번 뿐인 기회였고, 저축한 돈으로 그 앨범을 샀다. 그 덕에 귀중한 한국의 원본 역사 사진들을 갖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왼쪽)과 순종황제(오른쪽), 1910년대. ⓒ Hsu Chung Mao Studio.
1905년 서울 광화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Hsu Chung Mao Studio.
1910년대 음식 등을 팔고 있는 한국 마을 아이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Hsu Chung Mao Studio.


쉬충마오는 어렵게 수집한 수많은 사진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가 특별하게 느끼는 가치는 ‘역사 공부’보다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이 땅에 뿌리내려 접점을 만들고, 싸우며 살아가고, 고통 받지만 때로 짜릿함을 맛보는 감정을 이해하고 느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 접한 한국 독자들과도 교훈보다는 공감을 나누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누구에게도,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느끼거나 생각해보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저 독자들의 감정을 공유해 내가 배울 수 있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컬렉터로서 한국 자료의 가격 전망도 조심스레 내놨다. 앞으로 크게 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쉬충마오는 “1990년대부터 방문하던 일본 도쿄에 있는 희귀 고서점(古書店)이 있는데, 중국인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서점을 찾아 중국 관련 자료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희귀 자료의 가격이 치솟았다”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한국인들은 최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자료들을 사지 않았다. 한국인들도 최근에는 관련 자료들을 사고 있고, 한중 자료가 연관이 있는 만큼 곧 한국과 관련된 좋은 자료들도 거의 다 사라지고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쉬충마오는 역사가 담긴 귀중한 자료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사진을 기꺼이 공유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두고 “지금 내 인생의 사명이 됐다”고 강조했다.

1910년 3월 25일 조선의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 전에 남긴 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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