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들의 의문 그래서 탄생한 '신박한' 시험
[김용만 기자]
지난 6월 12일부터 6월 16일까지 김해금곡고등학교에선 연극통합수행평가를 실시했습니다. 올해 3년 차인 교육과정입니다. 단순히 연극을 체험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일주일간 연극 활동을 관찰하며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활동입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경남 김해 한림면에 위치한 각종학교(현행교육의 기간학제를 이루고 있는 6·3·3·4제의 계통 밖에서 학교교육과 유사한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쉽게 설명 드리자면 흔히들 말씀하시는 대안학교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어, 역사만 정규수업의 50%만 시수를 확보하면 되는, 교육과정이 자유로운 학교입니다. 해서 김해금곡고등학교는 다양한 교과를 편성·운영 중입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말 그대로 학교의 대안 모델을 찾기 위해, 아이들의 건강하고 다양한 성장을 위해 많은 고민과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평가'입니다.
보통 학교에서 이뤄지는 평가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나뉩니다. 즉, 이해하고 암기한 내용을 확인하는 지필평가와 해당 교육 내용에 대한 수행력을 평가하는 수행평가로만 학생을 평가합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 교사들은 여기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한 사람을, 한 학생을 지필과 특정 수행하는 것만 가지고 오롯이 평가할 수 있는가?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그 학생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학생의 변화 과정을 보는 절대 평가
저희는 학생들의 삶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매년 연극통합수행평가의 핵심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춰 전 교과가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일주일간 학생들끼리 토의하고, 연극의 시나리오를 쓰고, 소품을 만들고, 조명·음향 등 스태프 경험을 하고, 극을 완성해 무대에서 연기하는 이 모든 과정을 관찰하며 평가합니다.
즉, 연기를 잘하는 것이 평가 목적이 아니라 일주일간 전 과정을 보며 학생들의 다양한 부분을 평가합니다. 평가도 다른 학생과의 비교·상대 평가가 아니라 학생의 변화 과정을 보는 절대 평가입니다.
어떻게 전 과목이 이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당연한 의문입니다. 올해 통합수행평가의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었습니다. '시간과 기억'을 중심으로 전 과목이 관련된 내용을 연구하여 평가 기준을 만듭니다. 이것을 연극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극 대본에 다음과 같은 과목별 질문이 담겼는지를 봅니다.
◇ 철학 원전 읽기 = 물질문명과 자연주의(비물질 문명)에 관한 철학적 탐구 중 물질문명은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가? 인간 문명의 발전은 시간이 흘러 쌓인 것의 결과인가 아니면 시간의 회전에 의해 나선형으로 진보하는 것인가?
◇ 전쟁사 = 과거가 바뀌면 미래도 바뀔까? 요시다 쇼인이 없었다면 태평양 전쟁은 없었을까? 조선은 일제로부터 침략당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기억과 시간'과 관련된 철학적 탐구가 반영되었는가?
◇ 문학 = 한국 현대사 관련 소설책을 읽고 그 소설의 내용이 대본화 되었는가?
◇ 'DIY(do-it-yourself 직접 제작) 목공' = 적절한 소품을 만들었는가?
◇ 보건 간호 = 본인의 생체 시계에 대해 알아보고 연극통합수행평가 기간 중 자신의 생체 리듬 분석하기.
◇ 한국사 = 연극 활동에 참여한 자신의 역사를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매일 기록하기. 일주일간 자신의 활동 내용을 성찰하며 조선시대 왕 중 누구와 비슷했는지 기록하기.
◇ 여행 지리 = 다크투어리즘의 개념 및 역사적 의미, 가치 등을 표현하였는가?
연극 지도를 위해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구민정 교수님과 대학원생 6분이 오셨습니다. 6월 12일 연극통합수행평가 시작 전 김해금곡고 선생님들과 연극지도 선생님들께선 영상 회의를 몇 차례 하며 같이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많은 분들이 같이했습니다.
▲ 팀별로 시나리오 방향을 의논 중인 학생들 |
ⓒ 김용만 |
▲ 자신의 생각을 표현 중인 아이들 |
ⓒ 김용만 |
▲ 과목별 배웠던 내용을 아이들이 정리한 글 |
ⓒ 김용만 |
▲ 시나리오를 그림으로 표현한 학생 |
ⓒ 김용만 |
▲ 연극 준비 중인 학생들 |
ⓒ 김용만 |
▲ 본 공연 |
ⓒ 김용만 |
▲ 모든 공연 끝난 후 연극지도 선생님들,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함께한 순간 |
ⓒ 김용만 |
2023년 김해금곡고등학교 연극통합수행평가는 잘 끝났습니다. 학생들은 뿌듯해했고 부모님들은 감동하셨으며 선생님들은 대견해하셨습니다.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에 상처받는 일도, 기분 좋은 일도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견뎌 냈습니다.
▲ 연극통합수행평가가 끝난 뒤 회의 중인 선생님들 |
ⓒ 김용만 |
2023년 연극통합수행평가 회의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순간 이 학생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학생들이 친구를 배려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선생님들의 평가 요소가 통합적이어서 가르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연극 지도 선생님들의 노력과 애정이 돋보였다."
흐뭇했습니다. 이번 활동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가던 중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도 역시 훌륭했습니다. 가르치시는 선생님들, 관찰하신 선생님들 모두 애쓰셨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 고민이 생겼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완벽한 작품, 즉 완벽한 결과에 매몰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연극 작품을 위해 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의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만을 위해 애쓰는 과정이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은 작품을 완벽히 연기하는 것이 이 활동의 목적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대안을 마련해 보자"
이것이 김해금곡고등학교 연극통합수행평가의 목적입니다. 쉽게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수많은 학교의 평가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교 중 학생을 이렇게 평가하는 학교가 있다,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습니다. 종이로 하는 평가가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평가는 더 공정하고 다양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완벽한 학교는 아니나 공정한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연극통합수행평가로 인해 학생들도, 부모님들도, 교사들도 같이 고민하고 감동합니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고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김해금곡고등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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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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